자주색 감자를 캐면서
-정일근
꽃은 허공가지에서 지고
슬픔은 땅속뿌리로 맺혔느니
여름날 자주색 감자를 캐면서
뿌리에 맺힌 자주색 슬픔을 본다
로에게 답장을 쓸 것인가에 대해
여름 내내 생각했다, 그 사이
자주색 감자꽃은 피었다지고
자주색 감자는 굵어졌다.
감자를 캐느라 종일 웅크린
늑간이 아프다. 웅크린 채 누군가를
기다렸던 나도 한 알의 아픈 감자였다
사람의 사랑도 자주색 감자 같아
누가 나의 뿌리를 쑥 뽑아 올리면
크고 작은 슬픔 자주색 감자알로
송알송알 맺혀 있을 것 같으니.
(감상)
슬픔을 품고 산다. 물방울 같은 슬픔을 달고, 옹기 같은 아픔을 견뎌내면서 성장하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꽃은 허공가지에서 지고, 그 슬픔이 자주색 감자알로 생성된다. 꽃이란 한 철 피었다 이내 사그라지지만, 슬픔을 간직한 뿌리는 땅 속에서 열매를 맺는다. 씨앗을 남기든 뿌리로 남든 화들짝 피어나는 꽃이 지고 난 다음에 일어나는 일이다. 꽃이 지고난 뒤의 슬픔을 껴안으면서 감자는 굵어졌다. 작가 또한 자주색 감자를 캐면서 자신도 또한 누군가를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 아픈 감자였다는 것을 고백한다. 살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인이 기다려 온 누군가는 누구였을까. 시인에게 먼저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였으며, 시인이 여름 내내 답장을 쓸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결국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많은 물음을 대신하여 시인은 자주색 감자가 견뎌낸 슬픔으로 감자가 굵어졌듯이 시인의 사랑도 크고 작은 슬픔의 결정체가 송알송알 열매가 되어 간다고 한다. 뿌리에 맺힌 자주색 열매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크고 작은 슬픔을 보듬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낸 사람들의 보상이다. 감자를 캐지 않아도 가끔 늑간이 아프다.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를 때 더욱 그렇다. 분단된 우리 역사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치는 요즘이다. 겹겹이 쌓여 온 슬픔을 잠재우고 알곡을 맺을 준비를 해야겠다. 유월이 눈앞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