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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삼장사 화상(巨濟三壯士畫像).>
<거제 삼장사 화상(巨濟三壯士畫像).>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4.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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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巨濟) 삼장사(三將士)란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거제의장(巨濟義將) '신응수(辛應壽)', '윤영상(尹榮祥)', '김희진(金希璡)'를 일컫는 말이다. 아래 시는 안덕문(安德文)선생께서 1700년대 말(末)에 거제도를 유람할 때 우연히 거제 삼장사의 화상(畫像)을 보고 느낀 점을 표현하신 글이다. 그림 속에는 삼장사가 전쟁 중에 화살과 돌을 던지는 모습과 군졸을 지휘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림 속 가장자리에 멀리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고현성 전투를 표현한 것 같다. 안덕문 선생은 그림을 보면서, 싸우고 있는 두 장사의 모습을 중국 역사에서 순절한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을 비교하였고, 지휘하고 있는 다른 한 장사의 모습은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이라는 뛰어난 재상과 흡사하다 한다.

◯ 거제 3장사 화상(巨濟三壯士畫像). / 안덕문(安德文)
三爲壯士一元戎 세 명의 장사들이 한 군대의 우두머리가 되어
生死堅盟矢石中 생사를 함께하자 굳게 맹세하고 화살(신응수)을 쏘고 돌팔매(김희진)를 하며,
巡遠心無先後異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이 거리낌 없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이하네.
蕭曹計有指揮同 소조가 헤아리듯 하며, 지휘(指揮)하는 모습(윤영상)이 전하는 바와 같구나.
海濱逖矣均天化 바닷가는 멀리 있다. 하늘이 널리 감동받은 듯,
圖上昭然特地忠 그림 위, 뛰어난 위인처럼 밝게 빛난다.
帶礪山河功可忘 국토(나라)에 충성하고 하산대려(河山帶礪) 맹세로 남쪽 변방을 지킨 인물!
南藩人物障吾東 그 공적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우리의 동쪽 경계를 지켜내었다.

[주1] 순원(巡遠) : 장순(張巡)과 허원(許遠),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명신(名臣)으로, 안녹산(安祿山)의 난에 수양성(睢陽城)을 굳게 지키다 순국하였다.
[주2] 소조(蕭曹) :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을 일컫는 말. 진(秦)나라 말, 소하(蕭何)는 한(漢) 고조 유방(劉邦)을 도와 반진(反秦)의 의거를 일으켰다. 그는 유방을 도와 진(秦)을 무너뜨리고 항우(項羽)의 초(楚)와 천하를 다투었던 5년 동안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소하가 죽자 그의 천거로 조참(曹參)이 승상에 올랐다. 그는 소하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소하가 만들어 놓은 틀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면서 오랜 전쟁으로 상처받은 민심을 치유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한나라는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급속도로 안정되어 갔고 이른 바 문경지치(文景之治)에 이어 무제(武帝)라는 걸출한 제왕을 탄생시킨다.
[주3] 대려산하(帶礪山河) : 하산대려(河山帶礪), 황하(黃河)가 허리띠같이 가늘어지고, 태산(泰山)이 숫돌만큼 작아진다 할지라도 변(變)하지 않겠다는 굳은 맹세(盟誓)의 말.

<거제(巨濟)삼장사(三將士)의 임진란 활약상>
임진란(壬辰亂) 당시, 거제(巨濟) 고을에 삼장사(三壯士)가 있었는데 한 장사는 칠원 윤씨 윤영상(漆原 尹榮詳)이며 자는 국서(國瑞)요 호는 둔암(遯巖)이며 많은 지혜가 있었다. 또 한 장사는 영산 신씨 신응수(靈山 辛應壽)로, 호는 와은(瓦隱)이고 김희진장군이 처남이다. 세상에서 칭하기를 활을 잘 쏜다고 했다. 출생지는 거제면 명진리, 묘는 거제면 법동리 바닷가 근처에 있었다. 둔덕 상둔에 계묘가 있다. 마지막 장사는 김희진(金希璡), 김해김씨(金海金氏)로서 휘(諱)는 희진(希璡), 명묘(明廟) 임술(壬戌)생이며, 호는 구수암(龜睡菴)이고 담력과 지혜가 뛰어 났다고 한다.

임란 1592년 5월9일 거제현령 김준민이 진주성 방어의 명령을 받고 출동하면서 성주(城主)에 윤승보(尹承輔), 현승엔 김후석(金厚錫), 주장(主將)엔 신응수(辛應壽)를 지명하고, 젊은 3명의 의형제인 김희진(金希璡)을 남문장에 윤영상(尹榮祥)을 북문장에 지명하고 떠났다. 이때 제국(諸國)과 반중경(潘仲慶)은 거제에 남아 싸우는 것보다 이순신 막하로 가서 우국의 대의를 위해 상책이라고 떠나가고 윤,김,신 3장사가 끝까지 고현성을 수호하며 살아서는 한마음이요(生則同心) 죽음은 한날이다(死則一日)이라고 맹세했으나 5월12일 고현성이 함락 되었고, 성주(城主)에 윤승보(尹承輔)는 전사한다. 이 후 거제는 일부 서부지역과 부속도서, 바다를 제외하고 대부분 적의 소굴이 된다. / 5월7일 옥포대첩 후, 왜군은 거제도 전체를 장악한다.(조선왕조실록, 일본서기에는 왜군사망 없음. 왜선만 불타고 나머지 병력 거제도 전체 점령)
그리고 윤영상은 남여산(南呂山 연초면 다공리), 김희진은 계룡산, 신응수는 국사봉 굴속에 숨어서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왜병을 습격하였다. 하청(河淸)장터에서 분탕질하던 왜군을 습격하여 섬멸하였으니 이를 설욕전이라 전하며 이 당시 넘던 고개가 연초면 덕치(德峙)고개라 전한다. 삼장사 서거 후 연초면 다공리에 삼충사(三忠祠)를 건립하고 봉안향사 하였다한다. 삼장사 모두 행어모 장군 훈련원 정 첨정(行禦侮將軍 訓練院 正僉正) 선무원종 일등공신 녹권을 받았으며 삼장사가 돌아가신 후 당상관의 직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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