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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아침꽃'을 100년후에 줍다
루쉰의 '아침꽃'을 100년후에 줍다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6.05.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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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조화석습(朝花夕拾), 이 멋진 말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쉰(1881~1936)의 산문집 제목이다. 아침에 핀(떨어진)꽃의 생김새나 향기에 바로 빠져들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음미하라는 뜻이란다. 거의 1세기 전의 꽃을 지금에야 다시 줍기도 한다. 루쉰의 여러 산문집에서 그를 가장 잘 알수 있는 글들을 골라 모은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이욱연 편역,도서출판 창)는 1991년 초판에 이어 200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10대 후반 신학문 공부에 뜻을 둔 루쉰은 의사가 돼 아버지처럼 잘못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고통을 덜어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본 유학중 환자치료 보다는 중국 민족의 정신개조가 더욱 중요하다고 각성했다. 정신개조에는 문학만한 것이 없다며 인생의 진로를 문학으로 바꿨다.
봉건주의와 반식민지 상태에 놓인 중국의 정신을 개혁해한다는 열망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의 문예운동, 정신개혁에 가장 적절한 형식이 ‘잡감’으로 불리는 산문이었다.
봉건주의에 빠진, 아큐정전의 아큐처럼 패배주의적 정신승리법에 침윤된 중국의 위선과 허구를 폭로하고 비겁과 거짓을 비판했다. 잡감은 시보다는 구체적이고 소설보다는 기동성이 뛰어난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짧고 풍자적이고 비판적이다. 문학성과 시사성을 두루 갖춘 명문들이다.
‘호랑이와 늑대가 중국을 먹고 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 청조말기 대혼란 상황은, 개와 승냥이가 한국의 팔다리를, 머리를 씹어먹고 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 구한말 상황과 흡사하다. 물론 동학혁명과 의병투쟁과 항일독립투쟁의 면면은 없지않았다. 20세기 초 한국과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는데, 봉건 세력의 억압과 착취가 최고조로 달한 시기다. 봉건세력은 오히려 제국주의와 손잡고 민중을 적으로 삼아 압살했다.
“용감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달려들지만, 비겁한 자는 분노하면 칼을 빼어들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분풀이를 한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민족에게는 아이들한테만 눈을 부라리는 영웅들이 수두룩하다.” ‘그 비열한 무리들’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 한마디로 앞길이 캄캄했던 사람들에게 던졌던 메시지는 강렬했다.
루쉰은 “물에 빠진 개는 더욱 두들겨 패야한다. 개의 성질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면서 모든 악한 세력에 맞서 비타협적 투쟁을, 지구적으로 벌여야한다고 강조했다. 민주화가 후퇴한 경험에서 두 번의 민주정부의 사례를, 어쩔 수 없이 되돌아보게 된다.
촌철살인의 풍자, 물러서지않는 논쟁, 탁월한 언어감각까지, 노신의 산문은 짧고 축약된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로, 비겁한 무리는 물론 억압자들과 그 협조자들을 공격했다.
봉건과 식민의 굴레에서 절망밖에 없었던 19세기말 20세기 초 중국에서 문학이라는 촛불 한자루 들고 스스로 길을 개척한 도저한 한 인간의 글이 미치는 영향을 얼마나 될까. 잠든 대륙의 혼을 일깨우기 위해 분투하던 한 문학가의 서늘한 목소리가 담겨있다. 현재의 중국은 루쉰에게 상당히 기대있다.
얼마전에 타계한 신영복 선생님이 공동번역한 루쉰의 전기 한권과 ‘정신승리법’이 압권인 아큐정전을 비롯한 광인일기, 조화석습 등 몇권의 책으로 루쉰을 평가할 수 없다. 다만 그가 남긴 치열한 문학정신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를 통해 문학의 작은 오솔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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