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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딸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두딸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5.01.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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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희 시의원의 여행일기

<여행일기1>
두 딸과 함께 떠난 ‘가 보고’ 유럽여행

오전6시 일어나서 8시30분 태어나서 처음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우리 집 주변을 돌고 있었는지 전화 끊자마자 택시가 왔다. 20킬로그램 넘는 트렁크 1개, 10킬로그램 넘는 트렁크 1개 그리고 각자 필수품을 담은 배낭 하나씩를 택시 짐칸에 실었다.
9시10분 장승포터미널에서 김해공항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표를 사지 않고 버스에서 바로 현금으로 계산했다.
“어른 2명 초등학생 1명에 얼마입니까?
“엄마, 나 이제 중학생이잖아”
“야 잇, 아직 졸업 안했잖아”
“초등학생 맞아요?” 버스기사가 물었다. 2만원을 줬는데 1천원을 거슬러 주었다.
10시10분 김행공항도착해서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출력한 e-ticket를 들고 아시아나 항공안내 데스크로 갔다. 비행기가 14시20분 출발이니 12시부터 발권한다고 했다. 휴대폰, 노트북 충전도 할 겸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12시 아시아나 항공사에서 발권을 하고 짐을 부치는데 밧데리는 트렁크에 넣지 말고 기내에 들고 가라고 했다. ‘의회 연수갈 때는 밧데리는 기내반입 안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기에 그냥 시키는대로 트렁크에 넣어둔 밧데리를 꺼내려고 자물쇠까지 채운 가방을 열었더니 친구가 부탁한 김치, 쌀, 라면, 마른미역, 쌈장, 참기름, 빨레비누가 펼쳐지고 줄서있던 사람들이 벼룩시장 열린줄 알고 쳐다보는데...

남편한테는 석 달 전에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공부하러 간 친구한테 간다고 하고 나가는 김에 애들에게 유럽의 선진문물을 직접 경험하게 하여 향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뿐만아니라 나도 유럽 도시와 유럽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실제로 보고 와서 거제시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고 “남자들만 불쌍하다”는 한탄섞인 말을 수십 번 들은 뒤 3주 일정으로 아시아의 작은 섬을 떠나 유럽의 좀 유명한 섬으로 출발했다.
비행기표는 ‘와이페이모어Whypaymore' 경상도 버전으로 ’뭐 떼메 더 주노‘에서 성인 3명 더블린으로 들어가서 로마에서 나오는 일정으로 표를(3명 왕복 3,600,000원) 예매했고 중간 일정은 ’노 플랜no plan 우리말 버전 ‘가 보고‘ 였다. 이 사실을 모르고 여행간다고 그것도 유럽으로. 들떠있는 두 딸들에게 두 가지 다짐을 받았다.
“힘들면 얘기해, 절대 짜증내지 말기, 그리고 둘 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초등학생이라해라”
“엄마, 난 대학생인데 초등학생은 좀 그런데...”
“아니야, 머리에 리본하나 달면 니가 단홍이보다 더 어려보여 걱정하지마”
출발은 설레임이었으나 그 끝은 어떨지 모르는 ‘가 보고’ 여행 시작!
발권하고 짐 두 개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해서 나왔는데 막내 홍이가 공항직원에게 딱 걸렸다. 무슨일인가 하고 갔더니 풀어 헤친 배낭에서 기내 반입금지인 스프레이가 나왔다. ‘아뿔사, 자기들 필요한 것 챙기라고만 하고 검사를 안 했더니...’
“스프레이 금지 품목입니다. 그리고 화장품은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어야하고요. 도대체 이 분유 깡통은 뭡니까?”
“아, 그거는 허브틴데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겁먹은 막내가 모기소리로 대답했다.
다이어트한다고 얼마전부터 아침, 저녁을 굶어가면서 혼자 허벌나게 마시던 ‘허벌라이프’ 다이어트 차를 깡통채 넣어왔으니, 나참
“아이고 이런 제가 잘 살펴봤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스프레이는 반납하면 되죠”
“여기에 사인하시죠” 난생 처음 공항반입금지품 명세서에 이름 석자 남기고 베이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공중으로 치솟아 어느 정도 고도를 유지하자 귀의 찌릿찌릿함이 없어지고 편안할때쯤 “엄마, 이 과자 봉지 터질라하는데 빨리 어떻게 좀 해 봐” 이미 감자칩 봉지는 팽팽하게 부풀어 막 터질것 같았다. 처음보는 과자봉지 팽창에 당황스러웠지만 천천히 감자칩 봉지 모서리를 찢었다. 공기인지 질소인지가 “쉬이익” 나오고 봉지는 납작해졌다. ‘감자칩 회항’으로 신문에 날뻔했다.
중국과 스위스를 경유해서 1월10일 토요일 더블린에 도착하는 비행일정이라 중국에 잠깐 내렸다가 다시 9일 아침 6시30분 스위스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해서 숙소 잡기가 매우 애매했다. 북경 시내 구경하고 공항으로 와서 24시간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북경공항은 넓은 대륙에 걸맞게 의리의리했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려고 보니 ‘72시간 무비자 환승승객’을 위한 심사대가 따로 있었다. 줄을 서서 안내간판을 살펴보니 72시간이내 북경에 머물 계획인 승객은 호텔에 묶을 경우 인근 파출소에 신고해야하고 북경을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경고였다.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가’
입국심사대, 검색대를 빠져나오는데 1시간 가량 걸렸다.

천안문광장에서 셀카봉의 위력을 실감하다
“자, 이제 북경 어디로 가 볼까?”
“엄마, 관광안내센터에 가면 팜플렛 있지 않을까?”
“그렇지 한글로 된 것도 있겠지”
없었다. 오직 중국어와 영어로 된 것 뿐.
“어라, 우리는 중국어로 된 관광안내 책자가 있는데 너거는 왜 없는데” 우리말로 욕했지만 소용없었다. 할수없이 영어, 중국어가 섞인 가이드 맵을 들고 북경 천안문 광장으로 갔다. 1인당 25위안하는 공항에서 출발하는 Airport Express를 타고 종착역에 내려서 퇴근시간 이라 서울못지 않게 빽빽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드디어 천안문광장에 도착했다.

저녁7시 어둠이 짙을수록 천안문광장의 장엄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보던 천안문광장의 인자한 마오의 대형초상화 주변으로 중국공안들이 추운 날씨에 수고하고 있었고 마오의 초상화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폼을 잡는 관광객들이 제법 눈에 들어왔다. 지금이 바로 셀카봉의 위력을 보일때다 싶어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다.
천안문광장에는 국립박물관, 영웅기념탑, 마오기념관 등 많은 건축물들이 어둠속에 그 웅장함을 뽐내고 있었으나 시간이 늦어서 인지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하도와 도로 곳곳을 차단하고 지하철 내려서 검색대를 통과했는데 지상에 올라와서 또 한번 검색대에 짐을 통과시켜야했다.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가’
이제 슬슬 배도 고프고 춥고 지칠 때가 되자 짜증이 스멀거리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배고프면 애고 어른이고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감흥이 덜한 법, 서둘러 배를 채울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익숙한 대형 알파벳 M과 KFC가 보였지만 중국에 왔으니 현지 음식을 먹어야지 하는 편견을 가지고 중국식당으로 들어갔다. 수십가지의 메뉴를 보고 제대로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역시나 만두와 닭요리, 순두부요리를 시켰다. 그리고 중국맥주 1명, 콜라병, 물 2병 해서 102위안을 지불했다. ‘벌써 김 모락모락나는 흰 쌀밥에 김장김치 생각난다 우짜노’.
배가 든든해지니 탁구공만한 색색이 전구들이 장색 된 소나무 가로수가 신기하게 보였고 우리나라 1차선 도로 넓이의 자전거 길도 눈에 띄었다. 옛 궁궐인가 착각할 만한 공중화장실도 인상적이었다. 안개 자욱한 천안문 광장을 걷고 있는데 젊은 공안(경찰)이 말을 걸었왔다.
“Where are you from?"
'이런 중국에서 먹히는 얼굴인가?‘
"Uhm...I'm from Korea"
"You can't go down there"
‘어이 아줌마 거기로 못 내려가니 다른길로 가라’고 했다.
‘왜 멀쩡한 지하도를 못내려가게 하지,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가’
짧은 시간 만난 천안문광장의 밤 풍경과 이별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 공항으로 갔다.

북경공항에서 밤 샐 곳을 찾아 헤매는 두 딸과 6시간 죽치고 있었던 둥지 Costa Coffee
밤11시 지금부터 내일 아침 5시까지 죽치고 있을 공간을 찾아야하는데 외국 관광객들로 꽉 차 있는 24시간 카페에 들어갔다.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라 아픈 다리를 쉬게하는 게 우선이었다. 공항안내센터에가서 여권을 보여주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얻어오자 피곤하다고 징징거리던 애들이 잠잠해졌다. 그것도 잠시, 큰딸이 폭발했다.
“으악, 트위터,페이스북, 유튜브 다 안되잖아”
“야 카톡하면 되잖아”
“뭐야, 그럼 중국은 언론, 표현의 자유가 없는 곳이야 이런데서 어떻게 살아”
“사회주의국가라 그래, 겉으로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뒤에서 검열하는 우리나라는 어떻고”
큰 딸과의 사회주의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을 끝내고 내일 취리히에서 묵을 호텔을 예약했다. 취리히에서도 노숙을 하면 ‘두 딸들의 난’ 이 예상되어 취리히 공항에서 가까운 ‘모벤픽에어포트호텔’ 1박 숙박료 150프랑으로 예약했다. 새벽1시, 2시 시간이 지나자 정신이 비몽사몽, 해롱해롱지는데 막내 단홍이는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 들락날락거리고 눈거풀은 천근만근, 고개로 얼마나 절구를 찧었는지 목 중간 뼈가 떨어져 가는 줄 알았다.
스위스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6시간동안 둥지였던 카페Costa Coffee를 떠나 올 때, 공항 차가운 대리석바닥에 널부러져 자는 사람들을 보고 “야, 우리는 그래도 천국이었다”
짧은 만남 긴 아쉬움을 남긴 북경과 이별하고 드디어 스위스 취리히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릴 맞이 할것인가?
 

유럽의 겨울은 밤이 길다해서 긴긴밤 함께 할라고 챙겼는데

긴긴 유럽의밤을 대신하려고 챙긴 책들

*의정일기 대신 여행일기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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