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좋아하는 바둑과 우리의 일상을 접목한 드라마가 세간의 화제다. ‘미생,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드라마다. 주인공은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으로 입단에 실패한 ‘장그래’라는 청년이다. 그는 바둑공부 하느라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고졸검정고시합격이 최종학력이다. 이 드라마는 모든 면에서 사회 일반의 표준에 못 미치는 학력미달 신입사원 장그래의 처지를 ‘두 집을 못 내어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고 버려질 수도 있는 바둑의 미생마(未生馬)’에 비유하여, 그가 겪는 소외감과 아픔, 절망과 애환을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를 통하여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드라마에는 여느 기업드라마처럼 재벌2세와 신데렐라 여사원간의 환상적인 로맨스도,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시골청년의 성공신화도, 거대한 금력과 권력간의 유착으로 인한 사회구조적 부패 메카니즘도 없다. 그럼에도 드라마 ‘미생’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은 바둑의 미생마 같이 이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가슴 저미도록 절절하게 그려내는 현실성에 있다. 회사원과 바둑이라는 다른 두 세계의 접목을 10년 전부터 시도해왔고 3년간 준비해온 원작자 윤태호의 장인정신은 드라마 거의 모든 출연자의 입을 통하여 활화산처럼 솟구쳐 나오는 촌철살인의 대사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매회 쏟아지는 명대사를 받아 적기 바쁘다.
"이왕 들어왔으니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기는 버티는 것이 이기는 곳이야. 버틴다는 건 완생(完生)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장그래의 직장상사 오과장의 충고)
“남자가 넥타이는 맬 줄 알아야지. 어른이 되는 건 ‘나 어른이요’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야. 꼭 할 줄 알아야 되는 건 꼭 할 수 있어야지. 넥타이, 검소하지만 항상 깨끗한 구두, 구멍 늘어나지 않은 벨트, 니 아버지 철칙이셨다.
아무 데나 턱 앉지 말고 깔고 앉거나 닦고 앉어.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게 말인 거야. 어른 흉내 내지 말고 어른답게 행동해!”
(인턴사원 장그래가 계약직 사원으로 합격, 첫 출근하는 날 어머니가 넥타이를 매어주고 손수건을 건네주며 하는 말)
“정말 안타깝고, 아쉽게도 반집으로 바둑을 지게 되면, 이 많은 수들이 다 뭐였나 싶었다. 작은 사활 다툼에서 이겨봤자, 기어이 패싸움을 이겨봤자, 결국 지게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하지만 반집으로라도 이겨보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이 반집의 승부가 가능하게 상대의 집에 대항해 살아준 돌들이 고맙고, 조금씩이라도 삭감해 들어간 한 수 한 수가 귀하기만 하다. 순간순간의 성실한 최선이, 반집의 승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순간을 놓친다는 건 전체를 잃고, 패배하는 걸 의미한다.”(한국기원 연구생 출신 장그래의 독백)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네가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럼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그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돼!!”
(장그래 바둑선생의 가르침)
한마디로 드라마 ‘미생’은 ‘막장만이 살길’인 것처럼 왜곡되어 있는 우리 드라마계에 벼락처럼 내리 꽂힌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