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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에너지전환, 그리고 석유문명의 종말 2
코로나와 에너지전환, 그리고 석유문명의 종말 2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20.05.2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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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양원, 경남시민에너지협동조합 상임이사

 

승자와 패자

사회의 급격한 변혁은 가치의 이동을 수반한다. 청동기문명은 석기를, 철기문명은 청동기를, 그리고 석유문명은 가축과 인간 노동력에 편중되어 있던 가치를 내연기관으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를 선점하는 쪽과 기존 가치를 고수하려는 집단과의 투쟁은 필연적이다.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은 시장(市場)이다.

에너지전환으로 인해 석유문명이 붕괴하는 과정에서도 승패는 가려지기 마련이다.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쪽은 역시 석탄과 석유산업이다. 채굴산업에서 발전과 송전인프라까지, 산업 전반의 축소와 그로 인한 피해는 불가피하다. 2~3년의 시차는 있겠지만 천연가스 역시 동일한 수순을 밟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철강과 정유, 그리고 조선과 시멘트 산업이다. 이들은 대표적인 중후장대(重厚長大) 업종이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동시에 탄소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업종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공업과 제조업 분야는 석유문명 붕괴의 직격탄을 맞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대한민국 최고의 제조업인 자동차 산업을 한 번 살펴보자. 자동차 산업의 경우 일정 수준 규모는 유지되겠지만 기존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누리던 선두 주자들의 기득권은 힘을 잃을 것이다. 화석연료 자동차 제조의 핵심 경쟁력인 엔진과 트랜스미션이 전기차엔 필요 없다. 고성능 배터리와 모터만 있으면 수억 원짜리 슈퍼카를 능가하는 전기차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이 수십조 원을 들여 개발한 엔진과 트랜스미션은 이제 좌초자산이 될 위기에 처했다. 수백조 원을 들여 세계 전역에 설치한 생산시설 또한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시장의 헤게모니는 배터리와 모터 제조사, 그리고 IOT와 연계한 자율주행 및 전자제어시스템 개발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IT 기업인 구글이 전기차 제조를 선언한 배경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2040년부터 휘발유와 경유차 판매 중단을 선언했고, 인도는 더 나아가 2030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 운행 금지를 선언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으로 등극한 중국 또한 화석연료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기 위한 시간표 작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석유 수출국인 미국은 이 대열에서 빠져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미온적인 미국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처한 분열적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 2위의 탄소배출국(1위는 중국)이면서 1위의 석유수출국이고, 동시에 자동차 최다 보유국이다.

문제는 94%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가 아직까지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생산중단을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은 부품 제조에서 조립과 판매 및 A/S, 심지어 정유와 해상운송을 포함한 물류산업까지 수직계열화 되어 있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감안할 때, 현재와 같은 안일한 상황인식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자동차산업은 지금 매우 분열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전기차 투자에 집중하면 내연기관 시장이 축소되고, 이는 곧 정유와 조선산업에 까지 타격을 가하는 구조다. 그렇다고 내연기관을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수만도 없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다. 좌초자산의 규모는 지체되는 시간에 비례해서 커질 것이다.

싸움에서 패자가 있으면 승자도 있기 마련이다. 승자는 역시 재생에너지다. 재생에너지는 급락하는 초기 투자비용과 낮은 유지·운영비를 무기로 빠른 속도로 화석연료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에너지 저장장치 역시 새로운 블루오션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때문이다. 간헐성이란 기상상황과 시간적 제약에 의해 생산량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는 재생에너지의 특징이다.

석유시장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페트로넷은 석유·석탄·가스의 비중이 2019년 84%에서 2040년에는 68%까지 하락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전반적인 저성장 기조와 에너지 소비량 정체를 감안할 때 화석연료 소비의 절대량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축소된 화석연료 비중의 대부분은 재생에너지로 대체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는 향후 30년 동안 석유문명이 몰락하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석유문명의 종말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낙타를 탔고, 나는 메르스데스를 굴린다. 지금 내 아들은 랜드로버를 굴리지만 그의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타게 될 것이다.“

두바이 총리를 역임한 셰이크 라시드 빈 사이드 알 마크툼이 자국 경제의 석유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상황을 경고하는 뜻으로 한 말이다. 마크툼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도 더 지났으니 그의 증손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지금 낙타를 타는지 랜드로버를 굴리고 있는지 확인하긴 어렵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전 세계적인 에너지전환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화석연료 산업은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지난 1세기 동안 인류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준의 생산성 향상과 양적 성장을 가능케 했던 석유문명이 몰락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동시대 문명의 하부구조를 지탱하는 필수 요소다. 이를 가동하는 주요 동력인 에너지원의 전환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혁명적 변화가 예상된다는 뜻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변화의 충격을 흡수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류사를 돌이켜 보면 의식과 제도가 현실의 필요를 따라가지 못할 때 지체(遲滯)가 생긴다. 인식의 지체는 의지의 지체를, 의지의 지체는 제도의 지체를, 그리고 제도의 지체는 사회의 지체를 유발한다. 지체는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고 구성원들의 고통을 배가(倍加)하는 원인이며, 그 극단은 문명의 붕괴다. 이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공포와 혼란은 우리 사회 전체의 부담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 큰 고통으로 다가갈 것이 확실하다.

 

에너지전환 더 늦춰선 안돼

에너지전환이 불가피한 이유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해 기후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적 팬데믹의 원인 중 하나로 기후변화를 의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할 때 감염병 발병율이 30% 증가할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는다.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추이를 감안할 때, 앞으로 우린 꽤 오랜 세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72년 의학박사였던 제임스 러브록은 ‘가이아(Gaia) 이론’을 통해 지구를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할 것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대기권 내부의 모든 생명활동은 지구라는 생태시스템과 상호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공진화(共進化) 과정이다. 따라서 지구 생태계의 수용한계를 초과하는 인간 활동에 대해 가이아(지구)는 적절한 방어기제를 작동시켜 이를 억제한다. 가이아 이론에 근거하면 코로나19 역시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는 인간 활동에 대한 가이아의 방어기제 작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지구가 멈췄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런 수준의 자발적(?) 억제와 축소는 없었다. 그만큼 코로나는 현생 인류의 생존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 사태가 단기간에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설령 코로나19에 대응한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향후 더 강력한 바이러스 출현과 더 잦은 팬데믹은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지난 몇 년을 지나오며 경험했던 사스와 메르스는 우리의 우려를 확신으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지금의 생존방식, 즉 화석연료 기반의 경제구조와 확장적이고 상승지향적인 삶을 계속해서 고집하는 한,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기후변화가 극한의 기후재해와 생태적 교란에 의한 바이러스 창궐의 원인이라면 에너지전환 외 다른 대책은 없다. 문제는 우리의 상황인식이 필요한 만큼의 전환을 이뤄내기에 충분치 않다는 데 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간 패널)는 기후변화 저지와 그에 필요한 범국가적 대책 마련을 위해 UN 산하에 만들어진 기구다. IPCC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자와 전문가들이 있다. 이 기구가 지난 2018년 말 발표한 ‘1.5도 특별 보고서’는 제목처럼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 보고서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지구 최고의 과학자들이 수행했던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예측이 완전히 빗나갔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도 상승 억제 시나리오’ 역시 불완전하긴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와 전문가들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위협을 제대로 인식해야 하다. 여기에 더해 이를 바탕으로 기후변화라는 인류사적 재앙을 피하기 위한 에너지전환을 결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코로나19에 가장 모범적으로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 대한민국이 에너지전환에는 지극히 후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에너지전환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이 될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급격한 전환은 기존 질서의 붕괴를 수반한다. 이는 자연현상에 가깝다. 기득권의 저항과 사회적 혼란은 필연적이며, 제2, 제3의 두산중공업은 계속해서 생겨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각자의 진영에서 상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해댈 것이고, 그런 와중에도 기후변화와 함께 우리 삶은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후변화 임계점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다. 100% 확실한 과학적 사실이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건 우리의 관념과 이성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하루빨리 에너지전환에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을 열어야 한다. 이는 정치의 영역이며, 이 결단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메르스 대응 실패의 교훈을 통해 코로나19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듯, 지금의 위기를 기회삼아 에너지전환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 지금도 너무 늦었지만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가이아가 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을 것이다.

윤양원 저서 '기후, 위기냐 전쟁이냐'
윤양원 저서 '기후, 위기냐 전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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