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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외연수! 북중러 접경지역을 가다-2
첫, 국외연수! 북중러 접경지역을 가다-2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11.0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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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최양희 시의원의 해외연수기

2014년10월21일 국외연수 둘째날, 6시30분 모닝콜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하고 친절하게 녹음된 메시지와 간단하게 대화를 하고 오늘 일정인 학술대회에 맞는 좀 지적으로 보이는 의상을 준비해 놓고 아침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입김나고 손시렵고 오싹한 연길의 아침, 연변인터네셔널호텔 맞은편 건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름만으로 청소년들의 문화공간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연길시청소년활동중심‘ 우리나라의 청소년문화센터와 비슷한 것 같은데 공공건물 이름치곤 낯설지만 생동감있는 간판이 참 인상적이고 한번 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방문을 못한 것이 이번 연수중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아침뷔페는 찹쌀순대부터 떡, 만둣국 등 푸짐했다. 아침으로 순대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오전8시40분 1949년 개교한 학술대회장소인 연변대학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학생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정문에 '한복을 입은 젊은 학생들이 깃발을 들고 있는 부조'의 정문 말고는 눈에 확 들어오는 학교건물은 없었다.
연변대학 관계자들이 우리일행을 강의실로 안내했고, 참가자 명패와 쌀과자, 잎사귀가 달려있는 앙증맞은 귤, 바나나, 생수가 놓여있는 책상 주위로 연변대학교수들과 토론자, 발제자들이 앉아 있었고 CCTV(중국국영방송) 기자들이 와서 취재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사말과 소개로 30분을 보내고, 쓰고 있던 스마트폰터치 기능이 있는 볼펜을 나 한테 선물로 주신 림관헌 미국 환태평양문화재단 이사장의 ‘북한의 변화와 동북아 평화구축을 위한 한.중 협력방안’ 기조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학술대회는 ‘북한의 변화와 동북아 평화구축과제’를 주제로 제1 회의와 ‘라운드테이블(대북투자기업인초청간담회)형식의 제2 회의로 나눠어 진행을 했으며 제1회의 제1주제는 ‘최근 북한의 대내외 정책기조와 향후 전망’ 발표는 설용수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회장이, 제2주제 ‘조선의 변화 및 중한합작’ 발표는 청쇼허 인민대학교수가 했다.

청쇼허교수는 중국사람이라 중국말로 발표하고 우리는 번역본을 참고했다. 오전9시부터 시작한 학술대회는 기조발표와 제1회의 주제발표를 마치자 12시가 되었고 점심을 먹고 제2회의 주제발표와 토론자들의 토론, 질의응답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25년동안 평화문제연구소와 연변대학이 학술대회를 해 오고 있다고 했는데 남북관계개선과 학술대회의 무게감을 가지려면 당사자인 북한 학자들도 참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제2회의 제1주제는 연변대학 동북아연구원 현동일 교수의 ‘북한의 나선특구 추진현황과 중.한 협력과제’, 한국한림대 최태강교수의 ‘러시아의 극동시베리아 개발과 중.한 협력과제’를 발표하고 연변대학 국제정치학 박동훈교수, 김철교수, 남문희 시사인기자, 홍재현제주발전연구원의 토론이 이어졌다. 긴 시간동안 남북관계에 대한 발제와 토론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언젠가 통일이 되겠지’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남북통일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남북관계를 개인의 감정으로 보지말고 국가와 민족의 관점에서 생각해야하는데 대북전단살포와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하루종일 진행된 학술대회를 마치고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거제시의회팀들과 떨어져서 다른 일행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역시 푸짐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사이에 북한인권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북한인권법이 통일에 도움이 됩니까?” 물었다. “당연하지요. 그런데 야당국회의원들이 반대해서 못하고 있어요. 야당의원들 뒤에는 북한이 있어서 그래요.” 이 황당한 대답에 그만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저도 야당이거든요. 그런데 제 뒤에 북한없거든요” 쏘아 붙였다. 우리는 하나였던 분위기가 어색해 졌고 평화통일이 더딜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것도 다 분단이 빚어낸 비극이라 생각하니 통일에 대한 간절함이 더욱 깊어지는 밤이었다.

10월22일 국외연수3일째, 두꺼운 파카에 스키바지 입고 털장갑에 모자까지 완전무장하고 백두산으로 출발했다. 가는길에 윤동주시인이 다녔던 용정중학교를 들러 일제식민지에서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바친 독립운동가들의 기념관을 둘러보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념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로 3시간을 달려 2,750m 높이의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함)입구에 도착, 식판배식으로 점심을 먹고 서둘러 백두산으로 오르는 짚차를 탔다. 말이 안통하는 짚차 운전사는 멀리 웅장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눈 덮힌 백두산을 향해 구불구불한 콘크리트길을 거침없이 내 달려 해발2500미터 표지판을 지나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마음속에 그리던 백두산천지를 드디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두근거리고 설레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설레임을 사라지고 서글퍼지지 시작했다. 눈뜨고 볼수없을 만큼 강열한 햇볕이 파란하늘을 그대로 담고 있는 천지를 비췄고 강한 바람이 사람들을 밀어냈으나 언제 다시 오겠나 싶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일정이 늦어져서 서둘러 짚차를 탔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자마자 출발하는 바람에 급 커브에서 운전사를 거의 덮치다시피 했다.

깜짝 놀란 운전사는 성 난 눈으로 안전밸트를 가리키면서 안전밸트를 매라고 했다. 안전밸트 덕분에 내리막 급 커브에서도 쏠리지 않고 무사히 내려왔다.
차를 갈아타고 장백폭포로 이동했다. 80도가 넘는 백두산 온천물이 땅속에서 뿜어져나오는 길을 약 300미터 걸어 올라갔더니 생각보다 크지 않은 높이60여미터의 폭포를 만났을 때 해가 지려고 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오면서 백두산 주변 흙들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고 온천물에 삶은 계란을 맛보면서 백두산은 아직 화산활동중임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연수4일째, 북.중협력도시 훈춘시, 권하세관, 북한 중국 러시아가 만나는 지점 방천, 도문을 둘러보았다.

훈춘시는 러시아와 가깝고 러시아사람들이 많이 살고있으며 120개의 한국무역업체들이 들어와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속옷을 만드는 동일침직유한공사, 원래는 700명규모의 회사인데 현재는 100여명이 일하고 있었다. 훈춘변경경제합작구 부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중국이 북한의 인력을 싸게(대략300불,31만4천원정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5년후에는 북한도 산업화가 진행되어 불가능할것이라고 했다. 북한노동자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는 한국언론이 취재해가면 이상하게 보도해서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는 정치고 경제는 경제대로 진행되어야한다고 지적했다. 얼핏보면 영화배우 송강호를 닮은 부국장과 작별인사를 하고 권하세관으로 갔다.
지금은 북한과 중국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인지 건너편이 북쪽의 원정리인 권하세관통과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몇 대 없었다.
권하에서 버스로 2시간을 가서야 방천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오른쪽은 북한, 가운데 중국, 왼쪽은 러시아를 한눈에 볼수있었다. 중국에는 없는 바다가 저 멀리 보이는 곳도 바로 이곳 방천이다. 방천에서 도문에 도착했을때는 강 건너편 북한마을을 볼수없을 만큼 어두워졌다.
가물거리는 불빛만 바라보고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수밖에 없었다.


저녁식사 전에 학술대회 수료증 수여식이 있었고, 연수 마지막날인만큼 돌아가면서 소감을 발표했다. “짧은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던 연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막연하게 통일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돌아가면 국민정서를 통일을 염원하는 분위기로 만드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집으로 돌아 가는 날, 부족한 잠은 비행기에서 잘 요량으로 아침 5시에 연변의 새벽시장을 구경하러갔다. 정신 번쩍들게 하는 새벽공기를 마시면서 강변을 따라 공원을 가로질러 징검다리 건너 30분을 걸어 시장에 도착했다.

연변에서 교회건물은 여기 시장입구에서 처음보았다. 육류, 채소, 화초, 도서, cd등 없는 게 없었다. 생각보다 판이 큰 시장의 규모에 감탄하면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아직 깃털이 반짝거리는 죽은 꿩을 팔고 있어 흠칫 놀랐다. 꿩에서 시선을 돌리자 국밥, 떡, 순대, 만두,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팥죽 등등 먹거리 장터가 펼쳐졌고 아침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팥죽에 대한 미련을 안고 시장을 내려오면서 마지막 육류코너를 찍고 있는데 “으악” 털이 벗겨진 멍멍이들이 네 발을 하늘로 쭉 뻗은 채 쌓여있었다. 놀란 가슴 진정되기도 전에 주인이 칼을 들고 다리 한쪽을 내려 치려고 했다. 얼른 자리를 피했다. 동영상도 더 이상 찍을 수 없었다. 역동적인 새벽시장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갈 때 자세히 보지 못했던 공원과 공원에서 수련하고 있는 사람들, 출근하는 사람들, 청소하는 사람들 볼 수 있었다.
연변은 한적하고 광활한 농촌과 도시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도시 곳곳에 있는 공원은 건물로 빼곡한 거제시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연변의 마지막 아침을 보냈다.

- 2014년 11월3일(세월호참사202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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