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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국외연수! 북중러 접경지역을 가다
첫 국외연수! 북중러 접경지역을 가다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10.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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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최양희 시의원의 의정일기

 

새벽3시에 알람이 울렸다. 제7대 거제시의회 총무사회위원회의 첫 국외연수 출발 하는 날이다. 지난밤에 챙겨둔 여행용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설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새벽 4시 20분 거제시의회에 집결하여 사무국에서 준비한 물품을 각각 나눠 싣고 4시30분, 내리는 빗속을 달려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수화물을 부치고 검색대를 통과할 때 사무국에서 아침으로 준비해 준 김밥 두 줄이 신경쓰였다. 액체종류는 기내에 들고 들어갈 수 없어 검색대 입구 쓰레기통에는 반쯤 마신 각종 음료수 병들이 쌓여 있었다. 알류미늄 호일에 싼 김밥은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김밥은 무사히 통과.


7시20분 총무사회위원 소속의원 5명과 의회사무국직원 2명, 총 7명은 평화문제연구소와 연변대학에서 주관하는, 4박5일 일정인 ‘북,중,러 접경지역 현장연수’를 위해 대한항공KE1402에 몸을 실었다. 꽤 넓직한 비행기였는데 거의 빈 자리가 없었다. 부족한 잠을 자려고 눈을 붙이자 마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9시30분 연변옌지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 탑승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4박5일동안 함께 할 15명(평화문제연구소 직원3명,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회원 5명, 환태평양문화재단 1명, 제주발전연구원 1명, 한림대교수, 시사IN기자, 통일부직원, 한스자이델 재단1명) 일행과 만났다. 가볍게 인사하고 다 함께 KE825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1시15분에 무척 시골스러운 옌지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동안 기념으로 사진 딱 한 장 찍었는데 공안(경찰)이 다가왔다. 결국 강제로 사진을 삭제당했다.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


▲ 연길공항
입국할 때, 명단에는 있는데 한사람이 안 왔기 때문에 나보고 한명 안 왔다고 얘기하라고 했다. 카운터에 무표정한 공항직원이 뭐라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다. “He is not here." 했더니 직원이 못 알아 들었는지 또 뭐라고 했다. 최대한 귀를 열고 집중했더니 ”아이 왔습니까?“ 라고 물었는데 북한식 억양이라 내가 못 알아들었구나. ”아~네 한명 안왔습니다.“ 하고 통과했다.


공항에는 ‘연길’ 이라는 글자가 한글과 한자가 함께 크게 건물 위에 걸려있었다. 중국공산당이 소수민족의 고유언어를 지킬 수 있게 정책적으로 장려한다고 했다. 고유언어로 간판을 달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고 하니... 아파트를 비롯한 어지간한 간판들은 외국어 또는 외래어로 써야 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영 부끄럽게 느껴졌다.
홍광해 현지 가이드 말로는 연변에서 가장 좋은 버스인 2층 버스를 타고 출발한지 5분도 안되서 ‘인민로’라는 도로표지판을 보고 여기가 한국이 아닌 사회주의국가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하고 이렇게 자유롭게 다녀도 아무 문제없는데 우리민족인 북한과 왜 이렇게 못하는지 안타까웠다.


2층 버스는 조선족자치주 중심인 연길, 윤동주 시인의 고향인 용정시,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의 함경북도 및 양강도와 마주보고 있는 화룡시를 지나는데 추수를 끝낸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졌고 연변의 특산품 사과배나무들도 산비탈에 가득했다. 마을 언덕 여기저기에 혁명열사들의 비들도 보였다. 홍가이드에게 물었다. “우리나라는 가계빚이 1,000조에 이르는데 여기 농민들은 빚이 있는지?” “빚요? 없어요. 토지는 무상으로 나라에서 빌려주고 농사를 짓는 조건으로 국가에서 돈을 주는데 무슨 빚이요” 확실히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약 3시간넘게 달려 남평이라는 곳에 멈췄고 볼이 빨간 내 아들나이 또래 국경수비대 군인 3명이 버스에 올라왔다. 과거에 우리나라도 고속버스 휴게소 곳곳에서 군인들이 올라와서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처럼 검문을 시작했고 우리 버스를 타고 목적지인 북한의 무산광산이 보이는 전망대까지 같이 갔다. 두만강 건너 꽤 큰 마을이 북한이라고 했다. 학교로 보이는 곳에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고, 도로에는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고, 밭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의 필수품 망원경을 갖고 왔어야 했는데..’ 지정된 곳 외에는 사진촬영은 금지라 그냥 눈이 빠지라 쳐다 볼 수 밖에...


버스에 올라와서 스무살도 안돼 보이는 국경수비대 총각들 사진을 몰래 찍다가 그만 눈이 마주쳤다. 버스로 올라오더니 휴대폰을 달라했다. 내 사진을 다 지우더니 차에 탄 사람들 전부 휴대폰 검사를 했다. ‘나 때문인가...’ 정말 미안했다.
돌아오는 길에 화룡시 상업국 담당자가 버스에서 “조선의 무산광산은 100년동안 캐고 있는데 아직 10%밖에 못 캤다. 조선의 철광석은 어마어마하다. 저기 강에도 철광석이 아주많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안타까움은 더욱 깊어갔다.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과 남한의 훌륭한 인적자원이 합쳐지면 전 세계 부러울 나라가 없을 텐데...
한심하게 남쪽에서는 대북전단지를 뿌리고 있으니...
강을 사이에 두고 한쪽은 광물을 실은 트럭들이 먼지를 날리면서 달리고 있고 한쪽은 그 트럭을 바라보면서 달리고 있었다.

▲ 음식을 남겨야 대접을 했다고 생각하는 조선족 문화.

저녁은 조선족이 경영하고 복무원(종업원)이 모두 북한아가씨인 ‘해금강식당’에서 먹었다. 점심을 오전10시30분쯤 기내식으로 해결한 후라 처음에는 연변의 푸짐한 음식이 반가웠지만 계속 나오는 음식을 둘 곳이 없어 접시를 쌓아놓고 먹었다. 1인당 우리 돈으로 1만5천원에 이렇게 많은 음식을... 아깝다고 계속 먹을 수 도 없고... 머리째 구워 나온 닭인지 오리인지를 보고 식겁하자 사무국직원이 목을 댕강 떼 내고 나서야 젓가락이 갔다. 음식이 남지 않으면 손님대접이 소홀했다고 생각하는 연변사람들의 철학이 삶에 녹아 있는 것 이라고 누군가가 설명했다. 음식이 짜고 기름지지만 골고루 먹고 있는데 노란저고리에 하늘색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반갑습니다’ 노래를 시작했고 ‘목포의 눈물’ ‘아리랑’을 멋지게 불렀다. 아리랑 노래할 때 내 딸 같은 아이와 손잡고 춤을 추었다. ‘이 아이들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우리나라 사람들만 갈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단 말 인가’ 태어나서 이런 경험 처음이었다.
첫 국외연수는 복지국가 스웨덴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연변으로 간다 해서 시큰둥했었는데, 이 감정은 무엇인고...

다음 이야기는 ‘북한의 변화와 동북아 평화구축을 위한 한-중 협력방안’ 2014 한중학술회의 참관기, “대한민국 야당 뒤에는 북한이 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어르신들과의 어색한 저녁식사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2014년10월28일(세월호참사196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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