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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칼럼)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9.02.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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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전 거제교육장

 

교육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해 여름쯤인가 싶다.

퇴근 후, 씩씩거리며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풀어 놨다.

참, 우리 부부는 일을 다 마친 밤중에 집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오지랖 넓게도 온 세상 걱정은 우리가 다 하고 있음을 밝히고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학교에서 화난 아이가 엄마에게 화풀이하는 꼴이라고 놀려도 할 말은 없다.

교육장 업무 차, 하청중을 방문하는 김에 이웃한 경남산업고 교장실을 예고 없이 찾아간 적이 있었다. 마침 거제농업정책의 책임을 맡고 있는 분 중의 한 분이 원예과와 시청과의 MOU 체결을 위해 와 있었고 이런 저런 농업관련 이야기들을 하다가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평생을 농업정책에 관련된 업무를 하다가 이제 정년을 앞두고 농정의 책임을 지는 자리에 와 있던 분의 입에서 “여기에 농업관련과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라는 것이다.

수행한 공무원도 있었고 학교 관계자도 있던 자리였지만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되물었다.

“아니 농정을 책임지는 분이 지금 알았다고요?”

“경남에도 몇 개 안되고 거제에는 유일한 고교 농업관련과를 농정 고위공무원이 몰랐단 말입니까?”

더구나 그 분은 그 학교가 농업계고등학교 시절인 때에 그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이것은 대우조선 임원이 우리 회사에서 잠수함을 만드는 줄은 최근에야 알았다는 말과 초등학교 교장이 중학교에서도 무상급식을 하는 줄 최근에야 알았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황망했지만 몰랐다는데 별 도리가 있는가.

잊고 지내다 최근에 다시 그 기억을 되짚어 볼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아내는 내부적이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최근에 교육상임위원회에서 농해상수산상임위원회로 옮겼다. 사실 거제시의 환경을 감안한다면 도의원 3명 중 1명쯤은 농해수위로 배정 받는 게 맞는 일이긴 하여 전화위복일 수도 있겠다.

여러 자료들을 검토하던 아내 옆에서 ‘2018 경상남도 농. 축산업 현황’이라는 소책자를 펼쳐 보다가 ‘2018년 농업관련 예산 배정 현황’을 살펴보게 되었다.

경상남도 농정국에서 만든 자료집이었다.

경남 농정국의 2018년 총 예산은 5,080억 가량이다.

18시군 별 예산 배정 현황을 검토해 보니 거제시의 예산액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장 예산이 많이 편성됐던 지역은 합천군, 하동군, 밀양시 순이었는데 거제시 대비하여 농지면적은 각각 2.8배, 2.3배, 3.4배인 반면 예산액은 각각 7.5배, 7.2배 7.1배나 차이가 났다. 심지어 우리 거제시보다 농가 수나 농지가 60%밖에 안 되는 양산시도 예산은 1.7배나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 거제시의 농업인들은 도비나 국비를 안 받아도 되는 부농들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지원 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특용작물만 재배해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조선 산업에 종사하느라 토지를 전부 휴경하고 있는 건지, 대응투자 예산이 없어서 고의로 회피하는 건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어설픈 조언을 하면서 행여나 몇 년 전의 농업담당 공직자에게서 느꼈던 실망감과 하등 관계가 없기를 바랬다.

담당 분야에 애정과 전문성이 없는 공직자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 지역의 농가들에게 한 푼이라도 지원을 해 주기 위해 애를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직자는 예산이 많아도 지출이 성가셔서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다.

혹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면 거제시의 불행이고 거제농업, 한국농업의 불행이다.

그러지 않기를 제발 바란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다.

사람은 한 두 끼 먹어서 되는 게 아니라 평생을 먹어야 산다.

4차 산업이던 10차 산업이든지 간에 먹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다.

더구나 우리 민족은 밥을 먹어야 살게 되어 있다.

거기다 헐값에 사 들이는 수입농산물이 언제나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식량은 안보이고 국력이다. 장차 식량자급률이 국력을 좌우할 것이다.

또한 쌀소득보전직불금을 받기 위해 논을 밭으로 바꾸는 일이 과연 미래지향적인

정책인지도 제발 잘 살펴보기 바란다.

최대 쌀 수출국이던 필리핀이 이제 쌀 수입국으로 전락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다행히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에 발표한 ‘2018년 농업. 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7명이 농업. 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높게 평가하고 있고 농업을 유지, 보전하기 위해 추가세금을 부담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 10 명 중 5명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국산농산물에 대한 충성도는 매년 약화되어 33%에 그치고 가격이 싸다면 수입농산물을 구매하겠다는 비율이 오히려 38%라는 통계에서 위기감을 느낀다.

귀촌귀농을 확대하고 청년농을 육성하는 등 다각적인 정책의 지원이 필요한 때,

그 선봉에 서야할 공무원의 어깨는 무겁다.

특히 지금의 거제시는 더 그러하다.

이러한 소임을 마땅히 알고 오늘도 밥을 든든히 먹고 나서자.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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