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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의 옛 이름 '독로'와 '상군'
거제의 옛 이름 '독로'와 '상군'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10.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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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로(瀆盧)와 상군(裳郡)>
● ‘상군’(裳郡)과 ‘독로’(瀆盧)의 의미 / 허재영 건국대 교수 발표 문.
거제도(巨濟島)는 남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 이름이 한 때는 ‘상군’(裳郡)이라 불렸다. 뜻으로 본다면 ‘치마’인 셈인데, 이 섬을 ‘치마’와 연관지어 부를 만한 연유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최남선의 <동경통지>에서는 거제를 상군으로 부른 연유를 두고 한 구절 설명을 덧붙인 바 있다. ‘치마’를 뜻하는 속어로 ‘두룽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두룽이’라는 말을 문헌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비가 올 때 입는 ‘도롱이’는 짚이나 띠로 만들어 허리에 매어 입었으므로 ‘치마’를 뜻하는 ‘두룽이’가 속어로 쓰였다는 이야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두룽이’의 한자 표기는 ‘독로’(瀆盧)인데 우리말의 ‘도랑’에 해당하는 말이다. ‘도랑’이나 ‘두룽이’, 그리고 ‘도롱이’는 모두 ‘두르다’ 또는 ‘돌다’에서 파생된 명사다. 우리말에서 ‘두르다’에서 나온 명사는 흔치 않지만 ‘돌다’에서 파생된 말은 비교적 자주 쓰인다. 예를 들어 ‘도리’는 ‘둘레’를 뜻할 때와 ‘주기’를 뜻할 때 쓰인다. ‘도리 기둥’이나 ‘두리 기둥’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돌려 얹히는 나무를 뜻한다.
거제도의 땅이름이 치마나 비옷을 뜻하는 ‘두룽이’ 또는 ‘도롱이’였던 까닭은 섬 주위로 물길이 돌아들기 때문이었다. 외형상으로 전혀 무관해 보이는 ‘독로’, ‘상군’, ‘거제’가 모두 섬의 지형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러한 말이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도 고유어와 한자어의 대응 관계가 성립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일이다. / 허재영 건국대교수. 현재 10 여년동안 학계의 정설로 굳어진 자료입니다.

● 거제가 독로(두로)의 이름을 얻고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변한 12개의 토호국이었던 삼한시대였다. 군장이 있어 제정을 통할하였고, 중국과의 교류도 활발하였다.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변진전(弁辰傳)기록에 의하면 삼한시대의 낙동강 유역 진한 12국,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 변한 12국 등 변진 24개국 가운데 “변진독로국(弁辰瀆盧國)”이라는 국명과 “기독로국여왜경계(其瀆盧國與倭境界)”라는 기록이 있다. 즉, "변진 독로국은 일본과 경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독로국의 위치가 어딘지에 대하여 부산의 동래설과 거제설이 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거제도임을 분명해 보인다.
① 거제가 동래보다 일본에 실제 더 가깝기도 하지만, 당시 ㄱ). 동래에는 '거칠산국', 해운대엔 '장산국'이 있었음이 역사 기록에 뚜렷이 등장하기 때문이고, 또한 ㄴ). 고대인의 관점에선 일본과 가장 가까운 독로국(두로국)은 단순 거리가 아닌 해류와 조류, 바람을 이용한 현실적이고 실제 사용되고 있었던 거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ㄷ). 왜와 경계하고 있다는 말은 왜국으로 가는 경유지라는 뜻이기도 하다.
② 이학규(李學逵,1770~1835)는 낙하생집에서 '거제부는 변진때 소국이 있었는데 독로라 일컽었다가 후에 여기에 상군을 설치하였다'라고 기록하였으며[巨濟府 弁辰時有小國 曰瀆盧 後置爲裳郡是已],
③ 청나라 학자 정겸(丁謙)이 말하기를 '독로는 경상도 남쪽 거제도이며 이 섬은 동서 거리가 멀지 않았고 왜와 경계와 접하고 있다'[瀆盧, 當卽今慶尙道南巨濟島. 此島, 東西相距不遠, 故曰接界]했다. ④ 또한 양주동의 고가연구, 선석열의 경남대 문헌에서 본 가야와 고대 일본에 대하여 거제에 독로국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당시 거제 섬은 상당한 세력을 갖춘 해양문화집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⑤ 근자까지 삼한시대 두로국(瀆盧國)의 위치비정과 더불어 삼국~고려초기 거제지역의 치소는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명문 기와의 발견으로 최소한 고려이전 거제군, 특히 상군(裳郡)의 치소가 구체화되고 있으며, 둔덕면 거림리가 그 위치로 주목받고 있다. ⑥ 상군(裳郡)은 문무왕17년 667년 신라 문무왕명으로 거제도에 설치[新羅文武王所命]한 행정 명칭이다. 특히 ‘상사리(裳四里)’라는 명문은 기와가 제작된 지명으로 당시의 기와제작과 운반거리를 고려한다면 상사리지역은 거림리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점은 곧 상군(裳郡) 주위에는 상일리(裳一里)부터 상사리(裳四里) 이상의 행정지명이 분화되어 있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삼국~통일신라시대 상군(裳郡), 즉 거제군의 치소는 명문기와가 발견된 거림리 일대이며, 11세기 초기까지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독로(瀆盧)는 우리나라식 한자어로 '독로'라 읽지만, 2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실제 중국어로 지금도 '두루'라 읽는다. 당시 거제도가 섬지방을 일컫는 단어로 '두루'라 사용했는데, 한자어로 표기하면서 중국 음을 빌려와 사용하다보니 '瀆盧'로 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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