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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말의 옛이름 '금취'(금빛부리)
서이말의 옛이름 '금취'(금빛부리)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9.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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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금취'지명을 아시나요?< 일운면 서이말(金嘴,鼠咡末)등대>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남쪽 끝단, 지심도에서 내도 사이에 위치한 곳에 천연해식동굴과 기암괴석의 절경을 자랑하는 서이말 등대가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이 지역을 '금취(金嘴)'라 불리었다. 그 뜻은 '주전자 부리' 또는 중국의 '생황 악기 부리'처럼 그 지형이 뚝 튀어 나왔다고 붙여진 지명이다. 한마디로 '<금빛 부리>'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이말(鼠咡末)’로 지명이 변하였다.
서이말등대는 1944년 1월 5일에 최초 점등을 시작했으며, 총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하는 유인등대로서 백색원형 콘크리트구조물(10.2m)로 세워졌다. 이 등대에서는 20초마다 1번씩 20마일(37km)밖에서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추고 있어 거제도지역을 항해하는 선박에 항로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96년에 무인화된 홍도등대를 원격제어로 점·소등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 옛 어르신들이 '금취'라 알려준 구전(口傳) 외에도, 기록물로도 전해진다. [1782년 8월 왜선2척(一特送使倭船二隻)에 왜인111명이 먹을 게 없어 표류하다가 급히 금취(서이말등대) 앞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였다(及其金觜前洋 致敗下陸後). 생존왜인은 48명이었다(生存倭人四十八名). /옥포왜학이 금취 앞바다 왜인62명이라고 조정에 보고하였으나(金觜前洋致敗倭船所騎倭人六十二名) 이내 탄로가 나서 처벌을 받았다. 당시 표류왜인 숫자에 따라 지급양식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착복하고자 거짓보고를 했던 것이다.(승정원일기)]

또한 1872년 지세진지방지도에도 서이말등대 일대를 '금취(金嘴)'라고 뚜렷이 표기하고 있다. 아름다운 한자어인 '금취(金嘴)' 북쪽엔 와현봉수대가 있고, 그 남쪽 아래에는, 지금은 없어진 '망해(望海)'라는 수자리(와현봉수대)  와현봉수대를 지키면서 망을 보고 봉화불을 올리던, 망군 봉수군(봉망군)이 살았던 작은 마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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