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거제유배문학 1번지' 문동폭포
'거제유배문학 1번지' 문동폭포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9.15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06년 이행선생은 거제도 유배중에도 고현 상문동 주위의 곳곳의 이름을 지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보진당(保眞堂)', 그리고 現 '고자산치'는 당시 '화자현(火者峴)'이라 불리었는데 '고절령(高節嶺)'이라 개칭했으며, 배소 주위 유수(幽邃)한 골짜기를 '소요동(逍遙洞 삼룡초등학교 위에서 문동저수지 내 마을)'이라 했다.

現 문동저수지의 시내를 '백운계(白雲溪)', 정자는 '세한정(歲寒亭)', 바로 앞에 샘물이 솟는 것을 보고 '성심천(醒心泉)'이라 짓고, 이 샘물에다 직접 작은 못을 만들어 '군자지(君子池)'라 하였으며, 또한 그 아래 정자를 짓고는 이름하여 '차군정(此君亭)'이라 불렀다. 그리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보니, 푸른 벼랑이 물러서고 드리운 물결은 쏟아져서 굉음을 울리며 부서져 내리는 모습이 마치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듯하여 '운문폭(雲門瀑 문동폭포)'이라 하였다. 폭포수 아래 웅덩이를 '신청담(神淸潭)', 그리고 주위에 평평한 바위들이 있어 휴식할만하다 생각하여 '지족정(止足亭)'이라 명명했다. 이행선생과 최숙생 선생은 문동폭포와 계곡에서 각각10 여편의 시문을 남겼다.


1504년 갑자사화 때문에 당시 신현읍 일대에 유배 온, 최숙생(子眞), 이행(李荇,擇之), 강유선(元叔), 이려(強哉), 홍언승(大曜), 홍언충(直卿), 홍언국(公佐), 이윤(李胤, 子伯), 자선(子善), 홍언방(君美), 공백(恭伯), 이인지(李守訒, 訒之), 공신(公信) 등과 함께 교분을 나누었다. 1504년 늦가을부터 1506년 가을까지 거제유배생활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즐긴 장소가, 장평바닷가, 운문(문동)폭포, 소요동[상문동], 신청담(神淸潭, 문동폭포 웅덩이)과 매립전의 고현바닷가, 그리고 유자도(현 대섬(竹島), 현재 유자섬(橘島)은 당시에는 소도(小島)),, 주봉 계룡산, 구천동(삼거리)까지 함께 다니며 거제비경을 즐겼다. 거제고을 선비인 이악(李鶚, 斯立), 이맹전(李孟全), 이백완(李伯完)도 가끔씩 참석했으며, 또한 거제 관리 이수간(李守幹), 수위(守威), 수인(守訒), 수심(守諶) 형제들과도 시문을 교환했다. 이분들이 가장 자주 찾은 곳이 거제고전문학의 1번지, 문동저수지에서 문동폭포사이였다. 특히 최숙생 선생의 거제도 유배문학 작품은 거제읍지, 거제부읍지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