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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해금강 '서불과차'는 실존했다
거제해금강 '서불과차'는 실존했다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8.0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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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불(嘲徐芾 서불을 조롱하다.) / 김시습(세종 17년 1435~ 1493년 ) 


인생단백세(人生但百歲) 인생이 한껏 해야 백년도 되나마나 
수천차재천(壽天且在天) 그나마도 수명 장단 하늘에 달렸거늘  
언능인세간(焉能人世間) 어쩌면 이 세상에 허구 많은 사람들이 
진득팽조년(盡得彭豎年) 모두가 팽조의 나이처럼 산단 말인가 
삼산수소견(三山誰所見) 그 누가 삼신산을 보았다더냐 
선이수소전(仙餌誰所傳) 그 누가 신선의 약을 전한다더냐 
나하일필부(奈何一匹夫) 하나의 평범한 백성되어서 
기사만승주(欺詐萬乘主) 대단히 높고 높은 임금을 속일려뇨 
일가입동해(一舸入東海) 큰 배 뛰워 동해 먼바다 떠난 뒤로는 
표묘무인도(漂渺無人覩) 까마득히 소식조차 전혀 없더란다.
삼천동남녀(三千童男女) 애매한 삼천명의 동남동녀만이
고고제제수(呱呱啼啼隨) 울며 불며 그 뒤를 따라간다네
축사천재하(逐使千載下) 천년이 지나간 오늘에 와서
면회양가비(緬懷良可悲) 생각하니 그들이 불쌍하도다.  

봉래각(蓬萊閣)에 올라 / 권근(權近,1352~1409년)  


蓬萊古閣在高丘 봉래각 옛집이 언덕 위에 높이 있어
破礎頹垣野草秋 깨진 주초 무너진 담이 가을 풀에 묻혔네.
徐市不還天渺渺 서불이 아니오니 하늘이 아득한데
安期難遇水悠悠 안기를 만날세라 물만이 유유하이.
鼉噴雪浪長風壯 고래는 물결 뿜어 바람이 길게 일고
鼇戴神山灝氣浮 자라는 신산을 이고 맑은 기운 떠오르네.
秦漢到頭何事業 진황(秦皇)과 한무(漢武)의 마지막 사업이 무엇이길래,
白雲千載使人愁 천 년 동안 흰 구름만 시름에 잠겼구려.

[주1] 서불(徐市)와 안기생(安期生) : 서불과 안기생(安期生)은 모두 진나라 때의 방사(方士). 시황(始皇)은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려고 서불을 삼신산(三神山)에 보냈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며, 사자(使者)를 해중(海中)으로 보내어 안기생을 만나려 하였으나 풍랑을 만나 이르지 못하고 말았다.
[주2] 자라는 신산을 이고(鼇戴神山) : 발해(渤海)의 동쪽에 신선이 산다는 영주(瀛州)ㆍ봉래(蓬萊)ㆍ방호(方壺) 등 다섯 산이 있는데, 원래 파도에 밀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그래서 상제(上帝)는 책강(策彊)을 명하여 15마리의 큰 자라에게 이들 산을 이고 있게 하였더니, 그 다음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한다.
[주3] 진황(秦皇)과 한무(漢武) : 진시황(秦始皇)과 한 무제(漢武帝)는 부질없이 신선이 되려고 노력하였지만 끝내 아무런 도움도 없었다.


맺음말 : 앞서 소개한 ‘거제해금강 1.’편에 나오는, 조익찬(曺益贊)장군의 <갈도(葛島,해금강)> 1870년대 作品과 이유원(李裕元)선생의 1881년 作品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에서 공통점을 발견 할 수가 있다. “해금강 석벽의 바둑판 흔적 위에 서불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갈도석각가에서 언급한 ‘과차’ 두 글자는 아니라는 탁본소회와 그리고 “도해법과 만세고등법으로, 천명의 힘으로 새겼다”는 언급은,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거제해금강 마애각이 실존했다는 증거이다.
이에 해금강 전망대에 옛 선인이 남긴 한시(漢詩) 한 편쯤은 감상할 수 있도록 설치했으면 한다. 다른 지방의 관광객에게 천혜의 절경 해금강이 예로부터 칭송받는 명승지임을 알릴 수 있는, 김창협(金昌協)의 <해행(海行) 해변을 따라가며>, 조익찬(曺益贊)의 <갈도(葛島, 해금강)>, 이유원(李裕元)의 <갈도석각가(葛島石刻歌)> 中에, 선별해서 안내판에다 덧붙이면 좋겠다. 우리가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이 땅 거제도를, 빛나게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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