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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1921, 3000여명 줄다리기
고성 1921, 3000여명 줄다리기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7.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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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 마지막으로 청군과 백군이 나누어져 줄다리기를 한다. 굵은 동아줄을 놓고 양편이 갈라져 젖 먹은 힘까지 다해 당긴다. 그 경기가 끝나면 손바닥은 상처투성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가?’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느 시기부터 운동회가 사라지고 줄다리기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줄다리기는 색전(索戰)이라고 한다. 또 다르게 붙여진 이름은 줄싸움, 줄땡기기, 줄쌈, 게줄쌈 등 다양하다. 이 놀이는 봉건국가 시기부터 마을 대항전 차원에서 전승되어 왔다. 보통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음력 1월 15일)에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데 활용되었다. 간혹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 직후에 줄다리기를 하는 사례가 있다. 과거부터 서북지방의 돌싸움(석전)과 남쪽의 줄싸움은 조선 민중의 단체적 오락물로서 가장 왕좌를 차지하는 양대 대표 놀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조선인의 놀이문화는 줄다리기 외에도 씨름(각력:角力), 닭서리(계도:鷄盜), 널뛰기(도판:跳板), 연날리기(지연:紙鳶)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하는 놀이문화는 단연 줄다리기다. 부산경남지역의 대표적인 줄다리기는 영산, 밀양, 동래가 대표적이다.
앞의 3개 지역보다 고성군 고성읍내 줄다리기는 작은 규모로 보이나 거제, 통영 등지에서 구경꾼이 찾아올 정도로 큰 볼거리였다. 1921년 8월 24일 오후8시부터 다음날 오전3시까지 동외동(東外洞)과 서외동(西外洞) 주민 3,000여 명이 모여 밤늦도록 줄다리기를 벌였다. 줄다리기에 사용된 줄은 길이 180여 발에 굵기가 3,636cm인데 고성에서 처음으로 큰 줄싸움이었다. 1발의 길이는 162∼133cm를 기준으로, 최소 239.4m에서 최대 291.6m에 이르렀다.
주민들은 풍물을 치고 큰 깃발을 날리며 나팔과 고동을 불고, 주최측은 막걸리 한말씩을 의례히 준다. 음주이후 3천 여 명이 동서로 편을 지어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친형제간이라도 동리가 다르면 평생 아니 볼 듯이 눈에 핏줄을 올리고 싸우는 것. 경기 규정은 어느 편이던 한정한 경계까지 끌리어 가든지 또는 어느 편 줄이 끊어지면 승부결정이 되는 것인데 몇 시간을 다리든지 승부는 당일로 난다. 우승한 편은 대장이 말에 높이 앉아 춤을 추며 개선가를 부른다. 패한 편은 줄도 볼 힘없이 달아나 버리는데 그중에 땅을 두드리고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날 고성읍 동서편의 승자는 두 번 모두 서편에 돌아갔다. 이날 승부를 떠나서 농가에서는 가까운 이웃의 소작인에게 탁주를 대접했다. 또 떡이나 오곡(五穀)떡을 만들어 제공하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측백나무 잎이나 김에 밥을 싸서 먹으면 오곡이 잘 익고 가마니가 산처럼 쌓인다고 한다. 농경사회에서 연례행사처럼 이어져 온 줄다리기는 지금에 이르러 점차 사라지는 문화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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