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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치겠다고 이 희귀한 꽃을 죽이렵니까
골프 치겠다고 이 희귀한 꽃을 죽이렵니까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23.08.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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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노자산의 대흥란, 남부관광단지 골프장 건설로 멸절 위기
ⓒ 장용창▲ [그림 1] 흰색 바탕에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대흥란 꽃. 7월에 1~2주 동안만 피기 때문에 실물을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지난 7월 경남 거제시 노자산에서 저는 대흥란 구경을 실컷 했어요. 오래된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짙은 그늘 속, 낙엽들로 가득한 바닥에서 눈부시게 피어나는 대흥란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하얀색 바탕의 꽃잎에 빨간색 줄무늬가 선명합니다(그림 1).

대흥란의 실물을 본 사람은 매우 적은 것 같습니다. 대흥란은 인터넷 쇼핑몰에 안 팔거든요. 오직 대흥란이 자생(自生, 스스로 살아가기)하는 숲으로 가야만 대흥란을 볼 수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이런 최고의 아름다움을 저만 누렸네요(그림 2).

[그림 2] 대흥란이 사는 거제 노자산 숲속의 수백년된 개서어나무. 대흥란을 보려면 대흥란이 자생하는 숲으로 가야만 한다.
[그림 2] 대흥란이 사는 거제 노자산 숲속의 수백년된 개서어나무. 대흥란을 보려면 대흥란이 자생하는 숲으로 가야만 한다.

 

대흥란을 옮겨심기 불가능한 이유

대흥란을 집에서 볼 수 없는 이유는, 대흥란을 옮겨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도둑들이 대흥란을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숲에서 캐어가는 경우가 가끔 있었답니다. 하지만, 집으로 가져가서 화분에 심으면 다 죽어버렸다고 해요. 심지어, 원래 살던 숲속에서 대흥란을 캐어내서 다른 숲으로 옮겨심었을 때, 즉 이식(移植, 옮겨심기)했을 때도, 이식이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대흥란처럼 잎이 없는 난초들을 무엽란(無葉蘭)이라고 합니다. 보통 식물들은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영양분을 만들어 내는 반면, 이런 무엽란들은 잎이 없기 때문에, 영양분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무엽란들은 곰팡이와 같은 다른 균류들이 이미 분해해 놓은 영양분을 흙 속에서 얻어서 살아가는데, 이런 식물들을 부생식물(腐生植物)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한 무엽란 종은 특정한 하나의 균 종류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Ogura-Tsujita et al., 2021).

위 논문에 따르면, 대흥란은 곤약버섯류(Sebacinaceae)에 의존해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흥란이 살고 있는 토양까지 함께 옮겨 심으면, 그 토양에 곤약버섯류가 포함되어 있을 테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성공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대흥란이 균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습도와 산성도, 빛의 광도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대흥란의 이식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동북아식물연구소장인 현진오 박사는 "대흥란은 옮기면 살지 못하는 부생성 난초"라고 명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현진오, 2015) (그림 3)

▲ [그림 3] 대흥란이 살아가는 토양. 대흥란은 토양 속 특정한 균의 작용에 의지해 살아가기 때문에 옮기면 살 수 없다.
ⓒ 장용창

저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영화 <아바타>가 떠올랐습니다. <아바타>에서 사람들과 나무들은 모두 전기적인 신호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무가 포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마치 자기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대흥란도 이와 비슷한 것 아닐까요? 대흥란과 대흥란에 영양분을 주는 균과 그들이 살아가는 흙과 그 흙을 만들어 낸 나무의 잎과 그늘을 만들어서 적당한 광도와 습도와 산성도를 유지해 주는 나무들. 이 모든 것들을 별개의 생명체로 보기보다 하나로 연결된 생명체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골프장 건설로 사라질 위기

거제 노자산은 이런 대흥란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곳입니다(정명희 외, 2020). 23년 7월 11일과 20일에 낙동강유역환경청, 경상남도청, 거제시청 등이 선정한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이 노자산 골프장 예정 부지에서 조사를 해봤더니 부지 내 200곳에서 727촉의 대흥란이 발견되었습니다. 노자산이 대흥란의 최대 서식지라는 사실이 한 번 더 확인된 것입니다 (그림 4).

▲ [그림 4] 거제 남부관광단지(노자산 골프장) 예정 부지에 대해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이 전문가를 선임하여 공동조사를 벌인 결과 200여 곳에서 727촉의 대흥란이 발견되었다.ⓒ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 [그림 4] 거제 남부관광단지(노자산 골프장) 예정 부지에 대해 낙동강유역환경청 등이 전문가를 선임하여 공동조사를 벌인 결과 200여 곳에서 727촉의 대흥란이 발견되었다.ⓒ 노자산지키기시민행동

 

그런데 어떤 기업이 노자산의 백만 평 숲을 없애고 골프장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노자산에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업체는 "대흥란의 증식(增殖) 기술을 보유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와의 자문 및 협업을 통해 이주·이식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작성했습니다. (그림 5)

[그림 5] 거제 남부관광단지(노자산 골프장) 환경영향평가 보완서 중 36쪽. "대흥란의 증식 기술을 보유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는 대흥란의 증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정보공개청구에서 답변했다.ⓒ 환경영향평가 정보지원시스템
[그림 5] 거제 남부관광단지(노자산 골프장) 환경영향평가 보완서 중 36쪽. "대흥란의 증식 기술을 보유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는 대흥란의 증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정보공개청구에서 답변했다.ⓒ 환경영향평가 정보지원시스템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1) 증식과 이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림 6). 비유하자면 증식은 백두산에 살던 호랑이를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데려다 기르는 것이고, 이식은 지리산 숲속에 풀어놓는 것입니다. 증식은 인공적인 조건을 만들어놓고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만, 이식은 새로운 야생 상태에서 기르는 것이기 때문에 성공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저 문서에서 환경영향평가업체는 증식 기술을 가진 곳과 협의하면 마치 이식까지 가능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림 6] 대흥란의 증식과 이식의 차이. 증식은 실험실에서 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야생에 옮겨 심는 이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용창
▲ [그림 6] 대흥란의 증식과 이식의 차이. 증식은 실험실에서 하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지만, 야생에 옮겨 심는 이식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용창

 

(2)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 "대흥란 증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나요?"라고 제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물어봤더니,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는 "대흥란 증식은 연구를 진행 중인 상태이고, 이식은 연구조차 안 해봤다"라는 취지로 답을 해왔습니다 (그림 7).

[그림 7] 대흥란의 증식 기술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접수번호: 11026364, 접수일자: 23년 7월 21일)에 대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의 답변. 대흥란의 증식은 연구 중일 뿐이며 이식 연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림 7] 대흥란의 증식 기술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접수번호: 11026364, 접수일자: 23년 7월 21일)에 대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의 답변. 대흥란의 증식은 연구 중일 뿐이며 이식 연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보공개포털

 

저는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를 믿습니다. 낙동강유역환경청도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협의 의견서(23년 6월 19일)에서 "대흥란 이주·이식 시 대흥란 증식 기술을 보유한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와의 자문 및 협업을 통해 실시"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이렇게 쓴 이유는, 환경영향평가업체가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가 대흥란의 증식 기술을 이미 보유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식이 가능하다"라는 취지로 환경영향평가서 보완서에 쓴 글을 낙동강유역환경청이 믿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가 대흥란 이식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지혜로운 결정을 다시 내릴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환경권, 무용한 것도 사랑할 권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나는 무용(無用, 쓸모없는)한 것들을 사랑하오"라고 노래하던 시인이 있었습니다. 대흥란이 인간에게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더욱이 대흥란의 꽃은 스스로 자가수분(自家受粉, 꽃가루를 스스로 받기)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벌과 같은 수분 매개 곤충에게 꿀을 주지도 않고, 이런 곤충들이 찾아오지도 않기에, 아무 쓸모없는 꽃입니다.

그 결과 대흥란은 유전적 다양성도 떨어집니다. 즉, 어떤 기후 변화로 서식지 조건이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한꺼번에 멸종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환경권은 비록 무용한 것일지라도 사랑할 권리를 포함합니다. 곤충에게 꿀도 주지 않고, 유전적 다양성이 극도로 낮아서 작은 변화에도 멸종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대흥란. 7월의 겨우 한 두 주 동안 깊고 깊은 숲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아무 쓸모없는 꽃을 피워내는 대흥란.

초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라는 요구를 받으며 자신의 쓸모없음에 절망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너무 닮은 것 같아 애달픈 꽃. 이렇게 무용하고 연약한 대흥란을 우리 국민이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권리도 환경권의 일부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런 환경권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환경부(낙동강유역환경청) 공무원 분들이 "대흥란은 이식 불가능하므로 모두 원형 보존하라"라는 지혜로운 결정을 내려 주시리라 저는 믿습니다.

 

* 노자산 숲을 보호하고 이 기사와 관련된 여러 자료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신 국회의원 윤미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정명희, & 김성중. (2020).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 대흥란 자생지의 생태적 특성-거제시 (도) 노자산을 중심으로. 한국도서연구, 32(4), 301-316.

현진오. (2015). 엽록소가 있는 듯 없는 듯, 대흥란: 한국의 멸종위기식물 63, The Science Times.

Ogura-Tsujita, Y., Yukawa, T., & Kinoshita, A. (2021). Evolutionary histories and mycorrhizal associations of mycoheterotrophic plants dependent on saprotrophic fungi. Journal of Plant Research, 134: 19-41.

*****이 기사는 장용창 숙의민주주의환경연구소장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해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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