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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걷는 오늘>5 어머니의 눈물
<시를걷는 오늘>5 어머니의 눈물
  • 김성희 기자
  • 승인 2018.03.04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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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눈물

홍종기

병실 침상을 붙들고 살려달라며
평생을 같이한 소쿠리에 생을 가지런히 씻어
대살 사이로 줄줄 흘러내리던 물처럼
눈물 흘리며 가신 어머니

십 년을 혼자 삼형제 이고 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끝없는 여정에
강물보다 더 많은 눈물과
마디마디 닳은 손가락

회초리 들고 아들 종아리 치다
소나기 쏟아지듯 눈물을 무밥에 섞고
눈 오던 겨울 냉기 화로에 의지하다
아들 셋 다 죽이고 숨 몰아쉬기도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그 물에 빨래적셔
방망이로 고인 눈물 튀겨내고
동태가 된 젖은 빨래 주섬주섬
함지 안에 아들딸 담아 이고 걷던 어머니


………………………………………………………………………………………

쌀쌀한 봄바람 틈에서도 꽃망울이 환하게 눈 뜨는 3월이다. 3월은 대지의 여신이 쑥처럼 씩씩하고 쑥처럼 향긋한 새 생명을 몰고온다.

빨래터에서 누추한 삶을 방망이로 두드려 빨고 헹구는 경건한 의식을 행하던 어머니는 늘 봄처럼 요란하고
늘 봄처럼 분주하셨다.한탄할 삶의 노래같이, 복장을 치던 비탄같이, 어머니들이 두드리는 빨래 방망이는 꽝꽝 언 얼음장도 깨부수고 억척스럽게 물꼬를 열어 삶을 흘러가게 하던 어머니들의 삶 그 자체다.

만화방창 한 시절 꽃이었던 당신이
한 남자의 아내 되고, 어머니가 되어서
가슴을 탕탕 치고 눈물을 짜내며 견뎠던 모진 세월에도 봄은 수십차례 왔건만,
단 한 번이라도 꽃 피는 봄을 즐기고 살았을까 싶다.
꽃을 누리고 행복했던 적 과연 몇 번이었을까 싶다.

봄이 오면 보릿고개, 온 들녁 나물 캐러다니던 산길에서 잠시 꽃을 바라보며 춘곤을 잊었을까, 꽃들에 말을 건네며 배시시 웃었을까?

봄은 매년 오건만, 꽃들은 지천에 흐드러지도록 피건만 이제 그 봄에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병실 침상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우시던 어머니는 생의 최초이자 최후로 그 봄을 한 번 누리고 이승을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것처럼,
며칠이라도 여자로 소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게 한이 되어서 병실 침상을 붙들고 살고 싶다고 발버둥치며 울었는지 모른다.

봄은 여인들의 치마에서 온다는데
광목 몸빼바지에 여자를 가두고
자식들 쇠사슬에 발목 묶여서 모진 세월 견딘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난다.

지금 봄입니다. 이제는 오셔요, 어머니.
꿈길 사뿐 밟고 꽃잎 걸어서 오셔요.
꽃들이 가득찬 봄누리에 봄을 즐기러 오세요. 이 봄은 당신 것입니다.
오셔서 꽃처럼 활짝 피다가 가세요,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봄 편지 쓰면 바람이 전해주는 3월이다.

 
김성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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