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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 없인 착한 민주주의도 없다(2)
선거제도 개혁 없인 착한 민주주의도 없다(2)
  • 윤양원 기자
  • 승인 2018.02.16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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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선거제도가 바로 적폐다

 

선거제도 개혁 없인 착한 민주주의도 없다(2)

 

....(1편에 이어)

 잘못된 선거제도가 바로 적폐다

 1인 1표로 인해 발생하는 표의 등가성 훼손과 단순 다수대표제의 여러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비례대표제(比例代表制)’다. 그래서 우린 투표를 할 때 한 표가 아닌 두 표를 행사한다. 한 표는 후보자에, 그리고 나머지 한 표는 정당에 투표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선거제도다.

 하지만 형식적인 비례대표제의 흉내만으로 현행 선거제도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여기선 앞서 언급했던 ‘표의 등가성 훼손’ 외에도 현행 선거제도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불비례성(不比例性)’의 문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부분이 바로 ‘불비례성(不比例性)’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비례성이란 특정 정당의 득표수와 의석수가 비례하지 않는 정도를 뜻한다.

 예를 들면,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現 자유한국당)과 민주통합당(現 더불어민주당)의 득표율은 각각 43%와 37% 였다. 반면 새누리당의 확보 의석수는 152석으로 전체 의석의 51%를 차지했고, 민주통합당은 127석으로 41%를 차지했다.

 두 정당은 자신들의 득표율 합인 80% 보다 13%나 많은 93%의 의석을 가져간 것이다. 의석수로 따지면 새누리당이 25석, 민주통합당이 14석을 덤으로 확보한 셈이다.

 
반면, 이렇게 초과이득을 가져가는 정당이 있으면 그 반대편엔 반드시 손해를 보는 정당이 있기 마련이다. 선거는 정해진 의석수을 두고 여러 정당이 경쟁하는 게임이니, 특정 정당이 자기 득표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가면 나머지는 반드시 자기 득표보다 적은 의석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거대 양당을 제외한 통합진보당과 자유선진당, 그리고 무소속을 포함한 기타 정당은 전체 득표의 20%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의석은 7%(21석) 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물론 20대 총선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국민의당이란 새로운 변수가 등장하고, 통합진보당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정의당이 원내정당으로 입성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정치선진국 되려면 불비례성 낮춰야

 그래서 이렇게 득표율과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불비례성이 높아지면, 유권자의 투표의도와 최종 의석수 배정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정도가 심해지게 된다.

 따라서 높은 불비례성은 국민의 뜻이 입법의지에 제대로 반영될 수 없게 민의를 왜곡시켜, 최종적으론 민주주의의 본질인 국민주권을 훼손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할 것이다.

 이렇듯 선거제도의 치명적 흠결을 방치한 채 아무리 선거를 반복해봐야 그 결과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국민을 레밍에 비유한 어떤 인사의 말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론 제도적 흠결을 국민의 정치의식 문제로 둔갑시키는 기득권 정치세력들의 간교함과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정치역학과 선거제도 문제를 대다수 유권자가 이해하고, 나아가 합리적 대안을 요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럴 때 필요한 게 적절한 사례를 찾는 일이다.

 

 위 사례를 보면 불비례성지수와 그 나라의 정치수준이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좋은 선거제도란 유권자 각각의 투표행위 결과가 의석수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소선거구제도의 문제

  그렇다면 이런 높은 불비례성 지수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유는 우리의 선거제도가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 ‘소선거구제(小選擧區制)‘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지방자치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수정당들이 대부분 2인 선거구인 현행 선거구제 대신 4인 선거구제를 요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임을 이해하시면 좋겠다.)

  소선거구제는 기본적으로 작은 선거구에서 한 명의 후보를 뽑는 제도다. 그래서 좀 더 큰 선거구에서 2인 이상의 후보를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에 비해 ‘사표율(死票率)’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A,B,C 세 후보가 출마한 지역에서 A후보가 45%를 득표하고, B후보가 40%를 득표, 그리고 C후보가 15%를 득표했다면, 당선자는 당연히 45%를 득표한 A후보가 된다. 하지만 이 경우 B와 C후보에 투표한 60%의 표는 ‘죽은 표’, 즉 사표가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중대선거구제를 채택한 경우라면 결과가 달라진다. 위 세 후보가 출마한 지역이 2인 선거구라면, 당선자는 A후보와 B후보 두 사람이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사표율은 C후보에 표를 던진 15%에 그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85%의 표가 의석으로 연결된단 의미다.

    

과도한 사표율이 민의를 왜곡하는 주범

  사실 소선거구제에서의 높은 사표율은 결정적으로 선출된 후보의 대표성에 흠결을 준다. 투표율 60%를 가정하면, 이 선거에서 득표율 45%로 당선된 후보는 결과적으로 전체 유권자의 27%에 불과한 동의를 얻어 해당 지역의 대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의 동의도 받지 못한 후보가 본인을 지지하지 않은 나머지 73%의 민의도 대변할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해관계의 충돌 때문이다. 인간의 합리성이 자신의 이해를 초월한 영역에서 작동하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기대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실제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후보의 평균 득표율이 25%에 불과했단 사실을 상기한다면, 대한민국 국회가 왜 이렇게 다수 국민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문제 많은 소선거구제가 유지되는 이유

  이렇듯 사표율이 높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면 불비례성과 사표율이 동시에 높아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수십 년 동안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이 기득권 정치집단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우리 정치구조는 수십 년 동안 양당제 구도를 고착화시키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그렇다면 대체 거대 양당의 이해관계란 게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선거구제의 최대 수혜자는 거대 양당

  1987년 6월 항쟁을 통한 직선제 개헌을 성취한 이후 삼당통합을 통해 정권을 획득한 김영삼과 그의 오랜 경쟁자였던 김대중은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란 특정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세력을 형성했다.

  당시만 해도 지도력 있는 거두(巨頭)를 중심으로 정치 세력이 형성되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고, 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단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이 두 세력에게 있어 전라도와 경상도는 아마도 베이스캠프 같은 의미였지 않을까 싶다. 한 마디로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 같은 역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마지노선을 방어하기 위해 가장 좋은 선거제도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소선거구제 이상이 없었을 것이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6월 항쟁 이후 30년 동안 그들의 전략은 주효했고, 우린 이 좁아터진 한반도 안에서 남북과 동서로 나뉘어 정쟁을 거듭해왔다.

  한편, 수십 년을 특정 지역에서 한 정당이 패권을 쥐면 사실상 선거를 통해 사회적 변혁을 꾀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런 정치구도 속에선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이미 당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란 공식이 고착화 된단 의미다.

  그래서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가 유권자보다 공천권을 가진 쪽에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공천권 장사가 돈이 되는 이유다. 이 부분에선 사실 민주정의당에서 출발한 자유한국당이나 평화민주당에서 시작한 더불어민주당이 크게 다를 게 없단 생각이다. 둘 다 이 선거제도의 최대 수혜자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정치구도 속에서 기득권 정당에게 선거제도의 변화를 요구하는 건 어쩌면 나무 위에 앉아 물고기를 구하는 일과 다름없을 것이란 게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다수 국민의 요구와 양당구도의 최대 수혜자인 두 정당의 이익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구조적 이해관계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그래서 다음 글에선 현형 선거제도의 여러 가지 문제해결을 위한 합리적 대안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소개하고자 한다.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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