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김성희 시인의 '시를걷는 오늘' 4
김성희 시인의 '시를걷는 오늘' 4
  • 김성희 기자
  • 승인 2018.02.15 1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라간다
원종태
 
2만 볼트 송전탑에 노동자가 올라간다
 
지상 100미터 아파트 굴뚝에 사람이 올라간다
 
한강대교 꼭대기에 광안대교 비탈에
 
미끄러지며 청춘이 올라간다
 
더 내려갈 곳 없는 사람들이 올라간다
 
하느님이 내려오지 않으시니
 
사람들이 올라간다
 
눈송이는 자꾸자꾸 내려온다
 
 
시집 [빗방울 화석]
 
 
………………………………………………………………………………………………………………………………………………
 
  올라간다의 사전적 의미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가다', 이다. 이 표제어의 긍정적인 뜻과는 달리, 이 시에서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위험한 송전탑이나, 고층 건물 또는 한강대교 꼭대기로 올라간다는 행위를 드러낸다. 그들의 생존 방식 혹은 투쟁의 방식을 드러내는 불편한 해석이다. 
 
  제 노동으로 하루를 사는 하청 노동자들, 하층민들이 생계를 위해, 혹은 생존 권리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하고  올라가는 노동이고, 투쟁을 하기 위해 올라가는 노동쟁의이다. 그럼에도 화자는 그저 올라간다, 올라간다 라고 단순 반복하는 것이 그들 단조로운 삶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가슴 한 쪽이 쏴아하다.
 
 '더 내려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올라간다' 는 이 표현은 그야말로 역설적이다. 이를테면 하층민들에게는 나날이 집값이 올라가고, 물가가 올라가고, 실업률이 올라가고, 자살률이 올라가고 있는 이 시대의 통계적 현상이다. 그런 현상에서 그들 삶의 질은 내려가다 내려가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을 치고, 마침내 그 바닥에서 극단의 장소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고공농성으로 투쟁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 죽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하느님이 내려오지 않시니까",
낮은 곳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더 많이 필요한데, 오히려 외면당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점점 더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 처한 현실의 삶이다.
 
"눈송이는 자꾸만 내려온다"
라는 표현에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우리가 지향하는 높은 곳은 삶의 질이 향상되는 곳이지
그것을 추락시키는 낭떠러지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절박한 노동현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휘청거리고 있는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이 더욱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희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