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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필요하다!(1)
기본소득이 필요하다!(1)
  • 윤양원 기자
  • 승인 2017.11.24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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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촉발된 기본소득 논쟁

 기본소득이 필요하다!(1)

 

스위스에서 촉발된 기본소득 논쟁

 

 

지난 6월 전세계의 이목이 북유럽의 한 나라에서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에 집중됐다. 바로 기본소득 지급의 찬반을 묻는, 스위스에서 벌어진 국민투표였다.

 스위스는 만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매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미성년은 78만원)을 지급하자는 안건을 국민투표에 부쳤다. 물론 결과는 76.7%의 반대로 인한 부결이었지만, 반대의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세계 최고의 복지수준을 자랑하는 스위스 국민 대부분이 기본소득을 반대한 이유는, 300만 원 기본소득 지급의 댓가로 보편적 복지 수준을 대폭 낮추는데 찬성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무튼 스위스의 국민투표 이후,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 줄 알았던 기본소득 논쟁이 점점 열기를 더해, 급기야 전세계가 이 논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우리나라에도 기본소득 제도를 시행하는 지자체가 있다

 서울시와 성남시는 이미 청년수당의 형태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급하는 청년수당의 경우 일정 연령대(19세~29세)의 미취업 청년들에 대한 구직 지원금의 성격이고, 지급기간은 6개월에 한정되는 구조다.

 성남시 또한 3년 이상 관내에 거주한 만24세의 청년들에게 분기별 25만원씩 년간 10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그리고 내년부턴 대상을 확대해 16~18세 청소년들에게도 년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계획이다.

 물론 위 두 지자체의 기본소득 제도는 스위스에서 실시하려 한 조건없는 기본소득과 다소 차이는 있다. 하지만 특정 개인의 기여에 대한 댓가로 지급하는 수당이 아니란 점에선 크게 보아 기본소득의 범주에 든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그리고 만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 역시 일정부분 기본소득의 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이렇듯 기본소득이란 개인의 기여와 노동의 댓가로 지불되는 수당이 아니다. 한마디로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해 지급되는 소득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을 다른 말로 ‘존재소득’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의 정의에 의하면,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기본소득과 생활보장제도와의 차이

그래서 기본소득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기존 생활보장제도와는 다르다.

 첫째, 기본소득은 보편적 보장소득이다. 즉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급하는 소득이란 의미다.

둘째,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하는 무조건적 보장소득이다.

셋째, 가구 단위가 아닌 구성원 개개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개별적 보장소득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이자 그 이상이다. 모든 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보편적 복지이고, 단순한 재분배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생태적 전환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이행전략이다. 기본소득은 정의상으로는 매우 단순하지만 필요성, 정당성, 지향성의 측면에서 복합적이고 심층적이다.

  

기본소득은 왜 필요한가?

 - 시장자본주의 시스템의 태생적 한계

 경제학자이자 동시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저서인 ‘한계비용 제로사회(The zero marginal cost society)’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적 모순을 지적했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가치는 생산성과 효율성이다. 하지만 이 효율성이 최고조에 달하면 한계비용은 제로수준에 근접하고, 그 결과 재화와 서비스는 무료에 가까워지고 이윤은 고갈되며, 소유물을 교환하는 시장은 문을 닫고 결국엔 자본주의 시스템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한마디로 효율성의 역설이다.

 한편으론 과학기술의 끝없는 진보는 인간의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데 속도를 더하고 있다.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생산성을 가진 기계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차지하고 나면, 일자리를 잃은 인간은 무엇으로 소득을 유지하고 동시에 소비를 지속할 수 있을까?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개별 경제주체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들고, 줄어든 가처분 소득은 소비를 방해해 결국 경제는 성장을 멈추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본질상 소비 없는 성장은 불가능하고, 성장 없는 자본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기술문명과 결합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숙명이다.

 이렇듯 기술문명의 발달은 자본주의 시스템과 결합해 최상의 효율(?)로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하고 있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장에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화수분인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사실상 기술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모든 기술은 인간의 인력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이전에 없었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기술로 인해 창출되는 일자리는 그것의 출현으로 인해 없어지는 일자리를 능가할 수 없다. 그게 기술적 진보의 본질적 속성이다.

 신기술의 출현은 이전 기술의 부가가치를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해당 업종에 투입된 노동의 가치를 서서히 하락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일부 기술엘리트들의 자본독점 욕구를 자극하고, 결과적으론 부익부빈익빈의 사회구조를 더욱 고착화한다.

 이상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한계상황에 내몰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 사회는 새로운 변혁의 전기를 모색하기 위한 에너지를 축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축적된 에너지가 사회의 수용능력을 넘어서면 새로운 시스템이 이전의 시스템을 대체한다. 이 메커니즘(mechanism)이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되면 발전이고, 극단적으로 짧은 시간에 완성되면 혁명이다.

 이처럼 시장자본주의는 태생적 모순을 안고 탄생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동시에 이것이 대부분의 국가들이 일자리와 복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복잡하고도 어려운 두 가지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우리시대의 거대한 담론으로 등장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그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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