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이 선사한 이 옹달샘은 그동안 산짐승들이 목을 축이는 정도였지 수량 등 여건이 사람이 편하게 떠서 마실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맑은 물이 관을 통해 나와 물통에서 졸졸 흐르고 있다. 누군가가 이곳을 파서 돌을 날라 깔고 쌓고 물통과 관 등을 여기까지 짊어지고 와서 묻은, 간단치 않은 정화시설을 설치해놓았기 때문이다. 이 샘터에는 옥녀수라는 안내판과 빨간색 물바가지도 3개 걸려 있고 긴 의자도 놓여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에는 정성과 배려심에다 사람 향기까지 묻어난다.
올봄쯤인가 처음으로 도드라지지 않게 잘 다듬어진 아담한 이 샘터를 본 순간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마음을 빼앗긴 채 서 있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어떤 사람일까? 어떤 마음으로 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샘물처럼 끊이지 않고 솟아났다. 옥녀봉을 수없이 올라 이 샘터를 지날 때마다 샘물을 깨끗하게 마실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지 선뜻 직접 나서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눈이 반짝이고 절로 감동이 가슴을 울리고 온몸을 적셨다.
지난 8월 초 주말 산행에서 이 샘터를 찾았다가 물병에 물을 받는 중년의 등산객을 만났다. 이 등산객은 의자에 앉아서 가뭄 탓인지 관을 통해 흐르는 물이 가늘게 조금 나와서 물병이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산림이 좀 더 울창해지면 샘물도 지금보다는 많아질 텐데 하는 공감과 희망을 주고받는 말로 인사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산림을 보호하고 가꾸어야 할 주체가 오히려 굴착기로 옥녀봉 능선 오솔길 등산로 수 킬로미터의 산림을 무단 훼손했으며, 추가 훼손을 막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이 샘터 위쪽 오솔길 산림까지도 똑같이 망가질 뻔했고, 그것도 자재 운반용 찻길을 만들었다가 들통났다는 얘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래서 몸소 등짐을 져서 이 샘물을 마시게 만든 이가 더욱 빛나고 참 고맙다, 누군지 정말 궁금해서 찾고 있다고 나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이 등산객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한 후 좋은 일이 생기더라"라고 살며시 말했다. 그 순간 귀가 번쩍 뜨이고 아! 이 사람이구나 하고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의 궁금증이 한참 기다리다가 마신 샘물처럼 시원하게 풀려서 벅찼다.
옥녀봉을 찾는 이에게 숲의 기운이 깃든 신선한 샘물 한 모금을 맛있게 흠뻑 마실 수 있게 기꺼이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산행을 이어갔다. 이날 산행 내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뿐이었다는 그의 말이 머리를 맴돌면서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지금도 그 마음과 그 기운이 온몸 세포 하나하나를 짜릿하게 찌른다.
자연을 시퍼렇게 멍들게 한 옥녀봉 능선 오솔길 등산로 산림 훼손처럼 곳곳에 이기심의 발로가 넘치는 오늘날 옥녀수 한 모금이 우리가 인생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