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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록선생 거제면 읍치에서 노닐다
동록선생 거제면 읍치에서 노닐다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7.04.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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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는 화창한 꽃들이 만발하고 갈급(渴急)한 욕망(慾望)조차도 모두 허용될 수 있을 만큼 춘풍에 꽃가루 흩날리면 오색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반기고, 청춘들의 춘정(春情) 또한 참을 수 없이 만개(滿開)하기 마련이다. 남녀의 사랑 역시 봄날의 꽃과 닮아 예로부터 피 끓는 청춘(靑春)들의 사랑을 빗대어 '봄날의 상사(相思)는 말려도 핀다.'고 했던가?“기운 해 품은 바다는 황금비늘 일렁이고 춘풍 속의 버들개지 흰 눈인 양 나부껴라. 건널 사람 없는 배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꽃다운 섬에 해가 저무니 하염없이 머리 돌릴 뿐. 춘정(春情)이 제멋대로 시인의 감흥을 일으키니 마음이 뒤숭숭해 주체할 길이 없어라. 그대여~ 배 대어라! 내 어찌 참으랴. 상도(裳島, 거제도)에서 미인(美人)이 날 기다리니.”

약 200년 전,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선생은 거제읍내에서 다양한 친구들을 두었다. 거제부사, 동헌의 단실에서 근무하는 이(李)생원 그리고 진(倲) 아무개, 하(河) 아무개, 이(李) 훈장(訓長), 윤취지(尹取之), 의원 감사침(金士忱)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읍치에서 글깨나 쓰는 분들과 더불어 시단(詩壇)을 조직해 경치 좋은 야외에서 시문을 서로 주고받았다. 인근 구천동에서 시우들과 더불어 쓴 한시도 여러 편 남아 전한다.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해변에 위치한 남산(南山)은 자그마한 산인데, 현재 남산의 동편 바닷가는 연안습지로 일부 매립되어 있으나 예전에는 갯벌로써 바다였다. 읍치 남쪽의 남산은 한때 복귀산(伏龜山 거북이 엎드린 모습)으로도 불렀다. 남산 서편 바닷가를 따라 작은 산(山), 당산(堂山), 각산(角山), 환산(環山)이 이어져 있었는데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사라졌고 예전에는 남산 주위 마을을 남동리(南洞里)로 불렀다. 다음 시에서 동록 선생은 봄철 삼짇날 거제면 죽림포 또는 오수리에서 해안 꽃길을 따라 북편에서 노닐다가 남산에 올라보니, 봄날 흥취에 함께한 분들 모두가 시인이 되어 있었다는 내용이다.

1) 삼짇날 남산에 올라 읊다[三三登南山吟] / 정혼성(鄭渾性 1779~1843)
良辰正是值三三 바로 길일인 3월3일 삼짇날을 맞아
爛漫照光使我酣 휘황찬란하게 빛이 밝게 비추어 나로 하여금 취하게 하네.
客訪詩送浮白可 객이 방문하여 적은 시(詩)를 보내니 흰빛이 떠다니고
友携遊策踏靑堪 벗과 함께 노닐다보니 물결이 푸른빛으로 출렁인다.
好敎花鳥深愁負 걸핏하면 꽃과 새가 서로 좋아해 심히 애태우는데
自任騒人謾興戡 너도나도 흥에 겨워 시인을 자임하구나.
探勝湖山無不到 탐승하다보면 호산(湖山)에 가지 않을 수 없어
從西之北復登南 서쪽 물가에서 북으로 가다가 다시 남산에 올랐네.

거제부읍지(巨濟府邑誌, 1759년)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대변정 유양각은 거제읍치 남쪽 죽림포에 있으며, 현령 차의린에 의해 지은 것이다. 제승정은 현령 윤이태에 의해 지은 것이다. 운주루는 부사 변진영에 의해 지은 것이며, 모두 죽림포에 있다.”했다.
1899년 거제군읍지(巨濟郡邑誌)에 따르면, “거제면 죽림포 누정으로 대변정(待變亭)과 제승정(制勝亭) 운주루(運籌樓)가 위치했으며, 거제읍내 누정으로 진남루(鎭南樓) 사중대(師中臺)가 있었다한다. 사중대는 거제읍치 해안가에 위치했고 부사 양완(府使 梁垸)이 건립했다. 진남루(鎭南樓)는 부사 윤수인이 건립했다.(府使 尹守仁建)”고 전한다.

2) 진남루 시운에 차하다[鎭南樓次韻] 거제면 읍치 / 정혼성(鄭渾性 1779~1843)
元竜一面厭过雲 본디 용은 지나가는 구름을 억누르는 일면이 있으니
長使藩城靜祲氛 늘 변방의 성(城)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깨끗이 잠재웠다.
制勝堂形爭右立 제승당 형상은 우측에 서있어 다투듯 하고
運籌樓勢幷南分 운주루 형세는 남쪽을 아울러 나누어진 듯하다.
燃烽警報何嘗見 봉화에 불을 피워 일찍부터 경보를 알려온 이유는
枪鼓起驚亦未聞 놀라도록 북을 쳐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佇待島夷皮服貢 섬 오랑캐가 피복(皮服)을 조공(貢)하길 기다리며
欲圖王會示同文 사신의 그림을 그리려고 일찍부터 문서를 보여주었다.

 
3) 계룡산 저물녘 종소리[龍山暮鍾] / 정혼성(鄭渾性 1779~1843)
暮鍾隱隱出山烟 은은한 저녁 종소리가 산안개 속에서 나와
峽裡閑蹝世外傳 산골짝에서 한가하게 세상 밖으로 전하네
半夜何般驚寢睡 한밤중에 어찌 반야(般若)를 얻어 잠결에 놀라느냐
靜靜遙落溢江天 고요하고 넘치는 바다와 하늘이 멀리서 떨어진다.
산안개 가득한 거제도의 주산(主山) 계룡산에서 저물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이내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반야(般若)의 지혜를 깨닫고 스스로 놀라 일어나보니 저 멀리 거제만의 바다와 하늘이 고요하기만 하다.
[주] 반야(般若) : 분별이나 망상을 떠나 깨달음과 참모습을 환히 아는 지혜. 이 지혜를 얻어야 성불함.

<거제도(巨濟島)의 누정(樓亭)>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 집을 '누정(樓亭)'이라 부르는데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정루(亭樓)·정각(亭閣)·정사(亭榭) 라고도 부른다. 거제도는 대부분 바닷가 ...8진영과 읍치, 교통요지에 누정이 위치했다. 특히 관아시설 중 객사에도 누각을 만들어 접대·향연 및 풍속에 따른 의식을 가졌다. 평면구조는 대부분 직사각형이며 풍류·교육·접대·공공의식 등 문화적 공간으로써 복합적 기능을 겸하도록 구성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거제의 누정으로는 견내량 동쪽 벼랑에 무이루(撫夷樓), 오아포에 위치한 만경루(萬景樓) 청해루(靑海樓) 임해정(臨海亭)과 고현성 객관 북쪽의 황취루(黃翠樓), 한산도와 죽림포의 진남루(鎭南樓) 제승정(制勝亭) 대변정(待變亭)이 있었다 한다.
<거제군읍지 1759년, 1899년> 자료에 의하면, 무이루(撫夷樓)[재 견내량 동쪽 해안 금폐(在見乃梁今廢)]. 만경루(萬景樓)•청해루(淸海樓)•임해정(臨海亭)•해안정(海晏亭)[오아포에 모두 있었고 금폐(俱在烏兒浦今廢)]. 황취루(黃翠樓)[재 고현성 내의 객관 금폐]. 죽림포(竹林浦)에는 대변정 유양각(待變亭 維陽閣)이 현령 차의린 건립. 제승정(制勝亭) 현령 윤이태 건립. 운주루(運籌樓) 부사 변진영 건립했으며, 한산도에는 제승당(制勝堂) 통제사 조경 건립. 진남루(鎭南樓)는 부사 윤수인 건립. 사중대(師中臺) 부사 양완 건립 금폐(府使梁垸建今廢)] 라고 소개되어있다.
또한 거제 7진의 진영내에도 누각(樓閣)이 있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구조라성(城)내 청심각(淸心閣), 양화에 양화정(楊花亭), 지세포 백사장에 백사식송정(白沙植松亭), 옥포에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수관루(受款樓), 장목면 관포리의 해안정(海晏亭)이 있었다. 우리 거제도는 조선시대 대체로 약20 여개의 누정이 분포했음을 알 수 있다.
거제도누정의 명칭을 살펴보면 "무이(撫夷/오랑캐를 주무르다), 해안(海晏/바다가 편안하다), 진남(鎭南/진영의 남쪽), 제승(制勝/이기는 방법), 수관(受款/정성을 이루다)"의 용례에서 반영하고 있는 의미는 거제지역민의 독특한 해상방어의 기원의식이나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청해(靑海) 임해(臨海) 황취(黃翠) 해안(海晏) 만경(萬景)"등은 사면이 바다인 거제도의 아름다운 지리적인 특징을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거제면 서정리 바닷가 각산 근처에 있었던 연무정(演武亭)은 군관들이 무예를 닦고 병사들은 훈련을 하던 곳이다. 연무정에는 반드시 활터가 있었는데 활을 쏘던 작은 누대 이름이 사중대(師中臺)였다. 거제부사 양완(府使梁垸)이 1796년경에 건립했다고 거제읍지에서 전한다.
4) 사중대에서 적다[題師中臺] / 정혼성(鄭渾性 1779~1843)
亭在江山萬景中 정자는 강산의 수많은 경치 가운데 있으니
有吋登覽騁懷雄 올라가 보고자하는 마음에, 웅대한 뜻을 갖고 달려갔다.
楓欲潮打閑情動 조수가 밀려와 단풍잎을 띄우니 한가한 정이 움직이고
壁上烟收世念空 벽 위에 안개 걷히니 세상 상념 사라지네.
水府老竜峰似釰 늙은 용이 사는 물가 고을에 칼처럼 닮은 봉우리에서
騷壇元師月如兮 시단(詩壇)의 원사(元師)는 달처럼 거침이 없구나.
殘霞落照依微外 저 멀리 희미한 너머에는 노을 속 석양 비추고
極浦敀帆好飽風 아득한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는 옹골찬 바람 좋아한다네.
[주] 소단(騷壇) : 소단은 시단(詩壇)을 말한다. 문필가(文筆家)들의 사회.

5) 우음[偶吟] 2. 우연히 읊다. / 정혼성(鄭渾性 1779~1843). 거제시 거제면 앞바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과 통하는 지인을 기리며....
風烟好節夕天吟 바람과 안개 덮인 좋은 시절에 저녁 하늘 읊으며
褒我平生一片心 한평생 변함없는 우리네 마음 기린다
客去空懸徐子榻 객은 피하고 공연히 서자(徐子)의 자리만 걸어두었고
朋來更聽佰牙琹 벗이 돌아오니 백아(白牙)의 거문고 소리 다시 들리누나
[주1] 서자탑(徐子榻) : 동한(東漢) 때 남창 태수(南昌太守) 진번(陳蕃)이 일반 손님은 접대하지 않았으나 오직 그 고을 은사(隱士) 서치(徐穉)가 오면 특별히 그를 위해 앉을 자리를 내놓고 그가 떠나면 그 자리를 다시 걸어두었다고 한다.
[주2] 백아금(白牙琴) : 백아는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으로 거문고를 잘 탔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鍾子期)가 잘 알아들었다. 백아의 뜻이 높은 산에 있으면 종자기가 말하기를, “높고 높은 산 같구려”라 하고, 백아의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일렁일렁 흐르는 물 같구려”라 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고 한다.

6) 서운암[瑞雲菴] / 정혼성(鄭渾性 1779~1843). 거제면 계룡산 중턱에 위치했던 절
軣軣龍巒勢莫攀 요란한 계룡산은 산세가 가팔라 올라가기 어려운데
一菴高入白雲間 암자 하나가 흰 구름 사이에서 높이 위치했네
瑞霞飛盡東渲濶 상서로운 노을 흩어지고 동쪽 으스름달이 떠오르는
世外難分鶴背山 학이 내려다보는 산이라, 속세 밖인지 분간하기 어려워라

7) 저물녘 무지개[暮虹] /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
造化陰陽互吐呑 음양의 조화로써 서로 토하고 뱉어내더니
碧空橫帶彩橋痕 푸른 하늘을 두른 띠, 무지개 자취를 남겼네
光圍九萬雲衢日 구름의 갈림길에서 태양빛이 구만리 에워싸고
影燭三千海島坤 촛불의 그림자가 삼천리 바다 섬에 드리웠구나.
如或可登睠複直 혹여 오를 수 있다면 곧바로 다시 살펴보리라
莫之敢指照沈盆 잠겼던 물에 솟구치는 햇빛을 감히 가리키지 말고
濟西必見崇朝雨 거제도 서쪽에서 반드시 보았던 아침나절의 비가 그치자
坐咏詩葩到夜昏 앉아서 아름다운 시문을 읊조리곤 어두운 밤에야 도착했다네
[주1] 운구(雲衢) : 청운의 뜻을 펼쳐 조정에서 현달(顯達)한 것을 가리키는데 매몰(埋沒)되어 불우한 처지에 떨어진 인재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주2] 무지개는 음양의 기운이 어울리지 않아야 할 데서 어울려 생기는 것으로, 천지의 음기(淫氣)를 표상한다. 음과 양의 나쁜 기운이 서로 교차할 때 생긴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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