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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나무
소사나무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6.10.06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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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나무는 8부능선 이상에서 산다. 능선부나 바위너설이 있는 곳에서 번창하는 것을 보면 척박한 땅에서 더 잘 자라는 것 같다. 습기와 친하지 않은 듯하다. 자작나뭇과로 껍질은 회백색이다. 나무는 단단하고 키가 잘 자라지 않고 옆으로 잘 퍼진다. 줄기가 많은 다간형이다. 이파리는 작고 긴 달걀형인데, 황갈색 단풍이 일품이다. 운치가 있고 다양한 형상을 연출하기 때문에 분재로 잘 키운다. 예로부터 고목의 풍치나 자연의 멋을 완상하려는 식자들 사이에서 유행해 왔다.
분재는 나무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관상미를 만드는 것으로, 대체로 좋지 않은 행위다. 톱으로 자르고 철사로 묶고 꼬고 강제로 가지를 늘어뜨리고, 잘 자라지 못하도록 작은 화분에 묶어둔다. 요놈의 분재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교육 같다. 사회 자체 같다.
대부분 산에서 불법적으로 파와서 작업한다. 파가기 전에 미리 가지를 잘라 수형을 만들어 놓은 소사나무를 많이 보았다. 멋진 소사나무분재는 비싸게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소사나무는 타고난 아름다움, 그 쓸모 때문에 괴롭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을 살고 있다. 일회성의 짧은 삶에서 조급함은 어쩔 수 없나보다. 조급함을 다스려주는 곳으로 산만한 곳이 없다. 아무리 낮고 작은 산이라 해도 우주의 시간을 품고 있다. 도토리알은 둥글다. 씨앗이 멀리까지 잘 굴러가도록 하기위한 번식전략이다. 도토리가 알을 둥글게 만드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을까. 벌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색색이 다른 향기와 모양을 다듬는데 걸린 풀꽃들의 시간은 얼마일까. 수억년 수십억년? 거슬러 오르면 지구의 시간이라는 46억년, 우주의 시간이라는 165억년? 인간도 마찬가지다. 산간 계곡 거대한 바위에 난 시간의 물자국은 깊다. 폭포의 높이는 시간의 낙차다. 거대한 시간 속에 왜소한 시간의 몸뚱아리를 넣으면 편해진다. 인정하게 되면 생의 두려움도 줄어든다. 종교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우주시간은 우주에 맡겨두고 지금 시간을 말하자. 서정주라는 대부 시인은 일제가 몇백년 갈 줄 알았다며 친일을 변명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된 세대는 어떤가. 한 때 정의로왔던 사람들은 30년도 안돼 생활이 정의가 됐다. 짧고도 짧은 사회역사적 시간에만 살다보면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근현대사는 무기력을 강요하고 있다.

산길에서 소사나무가 사소한 제 삶으로 인해 바위를 깨는 것을 본다. 그 시간에 오래 머물렀다. 소사나무 씨앗 하나가 어느 날 우연히 바위 틈에 들었을 것이다. 때죽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씨앗들도 함께 들었을 것이나 오직 소사나무 씨앗만이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뿌리는 햇빛을 보면 죽는 법, 어둠만이 어둠의 깊이만이 그가 도달해야할 최후이자 시작이다. 여기저기 쪼개지고 무너진 바위에는 소사나무가 자라고 있다. 바위를 가른 소사나무는 7~8개의 줄기로 서 있다. 소사나무는 줄기가 갈라지는 다간형나무다. 보통 1줄기가 자란 후 30년마다 새 줄기가 자란다고 한다. 할배나무는 썩은 경우도 많다. 3,4대동안 뿌리와 몸피를 늘리며 바위틈을 벌리는 것이다. 가로 세로 6미터나 되는 바위를 무너뜨린 소사나무 가문도 있다. 대개 이들 가문은 100년에서 200년이상 바위에서 자라고 있으리라.
소사나무는 3,4대를 비 맞고 섰으면서도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모른다. 그 말도 모르면서 바위를 뚫고 가른다. 소사나무는 또 산에 살면서 우공이산이라는 말도 모르면서 산 정상을 무너뜨리고 산을 옮긴다.
“사람 몇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영화 ‘암살’의 안옥윤 대사처럼 소사나무 뿌리는 바위의 어둠을 파고든다. 바위를 쪼개고 깨고 무너뜨린다. 갈라진 바위 사이에 온갖 나무와 풀이 자란다. 바위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소사나무는 바위를 가르고 쪼갠 것을 자기가 한 일인 줄도 모른다.
유한성을 가진 존재가 유한성을 극복하는 자세, 내일이 아니라도 좋다는. 역사의 장기성과 굴곡성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넘어서는 작고 단단한 소사나무 숲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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