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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 대충화해를 위한 강박
제국의 위안부, 대충화해를 위한 강박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6.05.2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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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박유하, 뿌리와 이파리)는 문제작이다. 위안부할머니들의 출판가처분소송 결과 법원은 원고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34곳을 삭제하도록 했다. 현재는 삭제판이 판매되고 있고, 박유하는 인터넷에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지식인 사회 내부에서 격렬한 찬반논쟁이 불 붙었다.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법정에서 광장으로’ 이 책이 나와 논쟁해야한다는 측은 박유하를 옹호했다. 반대편에서는 역사수정주의다, 자의적 해석, 근거 없는 주장, 난삽함 등의 이유를 들어 학술서로서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며 공격했다.
나는 삭제되기 이전 책을 읽었다. 문제가 되고 있는 박유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소녀상'으로 대별되는 민족주의적 위안부 이미지는 일본군과 연애도하고 동지적관계였던 복합적 존재인 위안부 이미지와 그들의 고통을 소거시킨다.
-일본군이 기획자였기는 하지만 위안부 모집과 위안소 운영 직접 책임은 민간인업자와 포주에게 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 책임은 일본군과 일본국가, 식민지 시스템에 있으며, 이들은 '죄'를 지은 것이지 '범죄'는 아니다. 범죄자는 조선인 포함 민간업자와 포주, 일본군 개인이다. 위안부 중에는 자발적 매춘부도 있었다.
-위안부문제 해결방법은 정대협 등이 주장하는 방법(일본국가의 책임인정과 법적 배상)보다는 아시아기금형식으로 해야한다.
이같은 주장은 부분적으로 사실일 개연성은 없지 않지만, 본질에는 닿지 못했다. 부분적인 사실을 일반화하면서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쟁범죄, 여성인권 유린이라는 인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낡은 민족주의로 비난하며 위안부문제를 가부장제 등 페미니즘 문제로 축소하기도 한다.
정대협과 연구자들을 민족권력으로 규정하고 한일 화해를 망치는 주범으로 보고 한국 민족주의 해체 목소리 높인다. 이른바 거대담론과 운동권 논리에 대한 공격과 해체적 주장일 수가 있다. 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책을 쓰다보니 무리하고 난삽하며 서술 모순 등에 빠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박을 지지하는 지식인들도 비슷한 논리를 들이댔다.
박은 위안부를 필요로 하고 모집, 이송, 운영, 관리 등 총체적 기획자이자 최고책임자인 일본군과 일본국가의 책임을 뒤로하고 업자와 군인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있다. 위안부를 경제적 관점, 즉 성노동의 관점에서 살피다보니 발생하게 되는 근본적 오류다. 성노예적 관점과 큰 차이를 보인다.
한일간 화해를 위한다는 강박이거나 본질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자신도 모르게 일본 우파의 논리가 내면화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고통을 마주할 용기를 왜 피해자에게만 혹독하게 강요하는가. 고통을 마주할 용기, 반성할 용기가 정말 필요한 것은 일본국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일본국가 전쟁범죄다. 식민지 민족차별과 여성성차별, 성노예화에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군위안부를 필요로 하고, 그에 따른 요청-모집-이송-운영-관리 전 과정을 일본군(국가)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총괄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모집 이송 운영 관리에 있어 포주와 민간업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안부문제의 책임을 민간업자에게 전적으로 지우는 것은 국가 책임을 소거하는 것이다. 국가범죄, 전쟁범죄, 여성차별의 본질은 ‘성매매’의 관점으로 축소,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그는 ‘민간업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 일본군국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민간의 자율성이 얼마나 컸다는 것인가? 최종 책임은 주범이 지어야지, 종범에게 모든 책임을 물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박의 논리는 그렇다쳐도,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며 그를 옹호하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 지식인들의 해석의 자유가 더 경악스럽다.
일본은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국가차원의 사과와 배상이 명확해져야 진정한 화해는 가능하다. 이러한 주장이 해체되고 비난받아야할 순진한 민족주의일 뿐인가.
박의 애매모호한, 중언부언하는 서술방법도 문제다. 이를테면 강제동원은 있었지만 책임은 일본군(국가)이 있지 않고 민간업자에 있다는 등이다.
위안부 강제동원의 주체와 방법, 위안부의 성격, 해결 방법 등에서 보편타당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듯 하면서 결론은 이를 부정한다. 서술에 자신감이 없고, 독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15년12월28일 한일정부는 불가역적이라는 위안부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국가차원의 명백한 법적책임도, 배상도 없는 10억엔 규모의 재단 운용이 내용이다. 당사자인 위안부할머니들과 국회차원의 동의도 없는 형식상의 협상발표다. 뒤돌아서서 배상이 아니라느니 일본대사관앞 소녀상 철거가 조건이라느니 하는 것도 문제다. 한미일간 군사 경제체제 강화를 위해 '대충화해'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후퇴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는 이번 협상안에 대해 긍정적이다. 대충화해를 주장해온 이 책의 성과인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필요에 따라 요리하는 세력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먹으로 쓴 역사는 피로 쓴 역사를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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