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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 오늘)27, 박구경의 '채색'
(시를 걷는 오늘)27, 박구경의 '채색'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8.08.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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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

-박구경

누구네 집에 왔는지 날도 추운데 까치밥도 젊음도 다 사라지고
시커먼 구름 그림자만 가득히 지나는 마을 한복판
타작마당에 휴일이라 다니러 왔는지
누구네 색동 손녀들이 새뜻한 털모자 목도리 털장갑 흔들며 깔깔깔 웃음이 번진다

박구경 시집 [국수를 닮은 이야기], p. 26.에서 가져옴

어릴 적 고향은 원색의 바다였다. 빨주노초파남보 어느 것 하나 선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시절 색색이 아름다운 빛깔을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일상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마을에 색을 채워 넣었다. 수시로 담을 넘는 갓난아이 웃음소리, 흙탕물을 뒹굴다 들어온 아이들 혼나는 소리, 훌쩍이는 아이 코푸는 소리, 마당에서 들려오는 콩 터는 소리,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목울대를 타고 막걸리 넘어가는 소리, 그렇게 온갖 소리들이 마을을 환하게 채색했었다.

그런데 지금 고향에서는 더 이상 원색의 향연을 볼 수 없다. 온기와 명암이 지워진 고향에는 무채색의 바다가 넘실거린다. 잠깐 비쳤다 사라지곤 하는 원색이 모퉁이 한쪽을 밝혔다 금방 사라진다.

박구경 시인의 시, <채색>은 웃음소리가 사라지는 고향 내지는 시골 마을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1행과 2행을 통해 세대와 세대 사이에 연결이 끊긴 마을공동체의 모습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3행과 4행을 통해 색동 손녀들의 깔깔깔 웃음이 번지는 것을 통해 마을이 한순간이나마 무채색이 아니라 원색으로 물드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채색>은 반딧불을 닮았다. 3행에서 드러난 것처럼 원색의 웃음을 번지게 하는 색동손녀들은 ‘다니러 왔(는지)’을 뿐이다. 즉 그저 다니러 왔을 뿐 머물지 않을 것이기에 헛헛하다.

팔월이 지나고 구월이면 금방 한가위다. 박구경 시인의 시 <채색>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잠시 잠깐 무채색으로 잠들어있던 여러 마을공동체가, 고향이 잠깐 제 색을 가질 것이다. 그 때 마을공동체는 제 색을 가질 방도를 찾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시인이 시를 통해 말한 것처럼 마을을 채색할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니 그저 그렇게 바랄뿐이다./안인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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