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고문삼
바다는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뜬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아,
오늘은
부끄럽지만
참으로 기쁜 날
-거제민예총 [예술섬] 창간호, p39에서 가져옴.
‘시(詩)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시가 생긴 이래로 끊임없이 반복된 질문이다. 딱 부러지게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이 물음은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래된 정의들과 답변들을 통해 몇 가지 언어가 시의 근원에 접근하는데 유익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운율 혹은 리듬’, ‘함축 혹은 간결함’ 그리고 ‘비유와 상징’ 특히 메타포라 일컫는 ‘은유’ 등등이 있다.
현대시는 옛 시처럼 정형화된 형식을 갖춘 경우가 드물다. 산문시가 주류가 된 오늘의 시는 서정시에서도 운율이나 리듬을 발견하기 어렵다. 게다가 어떤 시들은 수필이나 단편소설보다 긴 것도 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시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시는 메타포(metaphor)다'란 선언적 정의가 한편에서 나오게 된 것 같다.
고문삼 시인의 시, <2017년 3월 10일>은 ‘시는 메타포(metaphor)’라는 정의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2연 8행의 짧은 시편은 함축과 간결함의 미학마저 갖추고 있다.
고문삼 시인은 <2017년 3월 10일>이란 시에서 이 날의 의미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날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 그 일에 대해 시인은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다만 <2017년 3월 10일>을 시제로 사용하는 것으로 그 날의 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 사건이 가능하게 된 경과와 그 사건의 결과로 느끼는 소회를 시인은 2연 8행의 짧은 시로 담백하게 보여준다. 시인은 촛불집회, 시민, 민주주의 그리고 탄핵 등과 같은 정치사회적인 단어를 나열하지 않는다. ‘바다’, ‘배’, ‘오늘’, ‘부끄럽지만 / 참으로 기쁜 날’ 이라는 몇 개의 시어(詩語)로 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안인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