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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 오늘)22, 김인선의 '굽은 등'
(시를 걷는 오늘)22, 김인선의 '굽은 등'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8.07.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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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등

-김인선


평생 일군 것이라곤
뾰족한 가난
꿀벌들은 날아들지 않았다
뭇 매를 견딘
자줏빛 살점
등은 휘이고

하늘은 늘
바늘 끝이었다

지게를 지고 허공을 걸어가는
내 푸른 곰팡이여

………………………………………………………………………………………………………………………………………………………

등은 내 몸의 일부이지만 내가 직접 볼 수 없다.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등의 한가운데는 손 닿기도 힘이 든다. 거울이라는 사물을 통해 비로소 내 등을 볼 수 있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가려운 곳을 긁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등의 역할은 어린 자식을 업어 키우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뼈가 휘도록 삶의 무게를 지므로 양가적이고 이율배반적이다.

아버지의 굽은 등이나 어머니의 따뜻한 등은 우리 정서를 관류하는 눈물의 수맥이다.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신체적 향수이다. 특히 아버지의 굽은 등은 당신 삶의 무게와는 반비례하는 황량한 들판처럼 쓸쓸하다.
그 시절 도시는 도시대로 농촌은 농촌대로 시대의 간난을 겪은 아버지들은 그 시대의 수난을 고스란히 등에 짊어졌다. 그러니 어찌 그 등에 자줏빛 멍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게를 지고 허공을 걸어가는
내 푸른 곰팡이여"

아버지의 삶이란 대체로 가난에 곰팡이 슬었지만 그 곰팡이에서 얻어낸 페니실린처럼 자식들 삶을 지켜주는 항생제이었음을 시인은 아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의 유년 깊숙한 곳에는 등이 휘인 아버지가 화사한 슬픔으로 서 계시는 것이다./김성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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