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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 오늘)21, 박남준의 '왜가리'
(시를 걷는 오늘)21, 박남준의 '왜가리'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8.07.09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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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가리
-박남준


필경 넋이 나간 것이다

한 점 온기도 남지 않은 앙금 같은 재

또는 처절하도록 팽팽한 제 몸을 당긴 시위

저 부동은 어디에서 왔나 어디로 가는가

마른 연줄기들 몸을 꺾은 겨울 방죽 가

오래전 고요한 외다리 왜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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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산책하는 고현천에서 왜가리를 본다. 이 시 속의 왜가리와 조금도 다를 게 없는, 고요를 동작으로 취하는 잠처럼 깊은 자세다. 물 흐르는 소리마저 적막하게 하는 왜가리의 흰 고집이다. 사방 어스름에 사위어 외다리 왜가리만 부각되는 그 흰빛은 일종의 외로운 투쟁 같기도 하다. 생존이 저리도 위태하거나 존재하는 방식이 저리 힘겨울 수 있지 않을까?

왜가리의 외다리 부동을 오래 지켜보면서 시인은 "처절하도록 팽팽한 제 몸을 당긴 시위" 그것이 먹이를 기다리는 고요한 격쟁임을 알아챘다. 뛰거나 달리거나 날아서 먹이를 구하는 것보다 견디는 것이 생존에 더 적극적인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삶이란 게 기다리고 견디는 일 말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체온을 잃지 않으려고 외다리로 선 채, 시간을 견디고 먹이를 기다리는 고요가 왜가리가 삶을 향유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인의 눈에는 인간 삶의 비루함과 던적스러움보다는 정갈하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 제 한 몸 살기 위하여 축적하고 훼손한 것이 많은데 비해 여름철새가 살다간 "마른 연줄기 몸을 꺾은 겨울 방죽 가" 는 오래전의 가난이 고요로 남아 있다. 겨울 시린 바람을 맞고 서 있는 시인의 뒷모습이 왜가리와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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