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回甲, 회향回向
-김일태
내게도 고향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네
돌아가야 할 데가 있다는 건
끝까지 스스로를 살게 하는 일
그 길이야말로 죽도록 아름다운 길이라는 걸
비스트라야 강 하구에서 보았네
한 생 휘돌아 물과 바다가 만나는 환승터미널에 내려
고향으로 가기 위해 숨 고르는 캄차카 참연어 떼 보며
한 생 휘돌아 안착한 우리 생의 하구인들 다르랴 생각했네
모든 짐 내려놓고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우카처럼 밍밍한 여생 예비하는 나를 향해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는 길 지우고
물살 가르며 다시 한 번 혁명을 꿈꾸라고
꼬리지느러미로 강바닥을 죽비처럼 내려치며
연어들이 외치는 고함을 들었네
지나온 낯선 것들과 다가올 익숙함이 뒤섞이는 환승터미널에서
캄차카 양대 산맥 갈피 지으며
자작나무 숲으로 난 찬 강물 거슬러 오를 채비 끝내고
은빛 몸뚱어리 빛내는 연어들 틈에서
푸르게 푸르게 치고 올라가야 할
내 환생의 길을 보았네
영혼과 육신 불사르며 최후를 향하는 저 연어들처럼
더 이상 갈 데 없는 그곳에 닿아
마지막 한 방울의 사랑마저 짜낸 빈 몸뚱어리
훌훌 버려야 한다는 걸 알았네
(경남문학 봄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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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고향이란 마음의 나침반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떠돌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고, 어디에 있든 아련한 향수를 불러오게 한다. 고향을 떠나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 고향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하다. 돌아가야 할 곳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해졌다지만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고향이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언젠가는 다시 그곳으로 가리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끝까지 스스로를 살게 하는 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한 생을 휘돌아 안착한 나를 향해 꼬리지느러미로 강바닥을 죽비처럼 내려치며 다시 한 번 혁명을 꿈꾸라는 연어들의 외침소리를 들으며, 푸르게 푸르게 치고 올라가야 할 내 환생의 길도 보았다는 작자의 심장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마지막 한 방울 사랑마저 마친 빈 몸뚱어리를 훌훌 버리는 연어를 보면서 작가도 회갑이 되어 회향의 귀로에 선 자신의 생이 연어의 회귀본능과 같다고 여기는 듯하다. 삶이란 어쩌면 온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 아닐까, 고향이든, 우주든,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어느 한 곳이든.<김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