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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 오늘) 16, 옥문석의 '다랑이 논둑길'
(시를 걷는 오늘) 16, 옥문석의 '다랑이 논둑길'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8.05.11 16: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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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이 논둑길

-옥문석

 

 

곡예사가 외줄 타듯

아버지는 다랑이 논둑길을

마라톤 하듯이 다녔다.

춘하추동

무슨 한이 서렸길래

저리도 아슬아슬하게

올망졸망

구남매 눈망울 그리며

곡예하던 그

다랑이 논둑길

지금은

아버지의 발길이

묵정논 풀섶에서 서성인다

아무 기별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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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록 새잎이 눈을 맑게 하는 오월이다. 단비가 내려 저수지 물을 채우면, 농부의 잰 걸음은 여명을 뚫고 들풀을 깨운다. 들판은 봄이 되면 분주하다. 논에는 물이 찰랑찰랑 차고, 농부들은 모내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작가는 거제시 연초면 다공 출신으로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자랐다. 작가의 아버지는 농부다. 구남매의 아버지이며 아들이며 남편이다. 삽작을 나서면 곧바로 들녘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시인은 하필 다랑이 논둑길이라는 시를 썼다. 아버지의 가픈 삶을 다랑이 논둑길에 비유하고, 위태롭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운 삶도 이겨냈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작가는 아버지의 묵정논 풀 섶에서 서성인다. 아버지의 발길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묵정논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단란했던 대가족을 추억한다. 오월의 들녘은 모내기가 한창이어야 하는데, 성장한 자식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다. 묵정논에는 풀이 무성하고, 시인은 묵정논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시인에게 아버지란 그런 존재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다랑이 논둑길을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듯, 조선소의 크레인을 올라타면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가 아닐까. 오월의 푸름만을 보지 말고, 이 푸름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난 뒤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도 바라볼 줄 아는 오월이 되었으면 한다. 아버지가 그리운 오월이다.

 

김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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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환 2018-05-16 11:00:20
영미,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