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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 오늘)15, 장옥희 참새와 할머니
(시를 걷는 오늘)15, 장옥희 참새와 할머니
  • 옥명숙 기자
  • 승인 2018.05.11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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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와 할머니

-장옥희

 

 

늦여름

나락이 여물어가는 논에

참새들 날아든다

저만치

할머니 오는 소리 눈치 채고도

일어설 줄 모르는 참새들

“휘여~”

“휘여~”

목 쉰 할머니 목소리엔

꿈쩍도 않는다

“챙, 챙, 챙…”

할머니가 두들기는 냄비뚜껑 부딪히는 소리

그제야 우르르 일어서는 참새들

돌아서는 할머니 뒤로

숨바꼭질이나 하듯 우르르 내려앉는 참새들

그래

쬐꼬만게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마는

반은 네 양식

반은 내 양식

할머니는 다 알고 있다

장옥희 , 2016년 < 문장21>에 ‘ 참새와 할머니’, ‘구절초’, 봉숭아 꽃물’, ‘된장국’,’ 발걸음’, ‘하늘을 봐요’ 등의 작품으로 동시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감상

장옥희 시인의 동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재미와 발랄함과 싱싱함과 평화에 동화된다. 시인이 힘껏 비집고 들어간 늦가을 황금들녘의 틈새에서 할머니가 구시렁거리는 혼잣말의 풍요가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천진스럽고 때로는 반전을 일으키기도 한다. 시인은 남다르게 언어를 잘 다루는 요리사 같다. 특유의 언어 감각과 가락을 표현해내는 감정이입의 능력 또한 탁월하다. ‘들녘’ 이라는 장소 체험과 시인의 정서적 대응이 잘 맞물려서 ‘참새와 할머니’를 실제로 눈앞에서 보듯 이미지를 시각화하는데 성공한다. 작은 벼 이삭에 온몸을 던져 도적질(서리)을 하는 참새떼와 한 톨의 나락이라도 지켜내려는 할머니의 자존심이 쫓고 쫓기며 티격태격하는, 이 ‘짧은 순간’을 포착하는 시인의 눈은 돌을 뚫어내는 번개 같다. ‘ 휘여~/ 휘여~/ 목 쉰 할머니 목소리에/ 꿈쩍도 않는다/’ 아예 참새들이 할머니쯤이야 하고 대거리하듯 달려드는 조막만한 것들의 당돌함이 독자들로 하여금 ‘킥킥킥’ 웃음의 구덩이로 몰아간다. 그런가 하면 ‘챙, 챙, 챙… / 할머니가 두들기는 냄비뚜껑 부딪히는 소리/ 그제서야 우르르 일어서는 참새들/’이 말 안 듣는 참새떼를 개구진 악동들에 비유한 표현이 뜨겁게 튀어 올라 리듬으로 솟구친다. 참새들 만세다. 결국 날지 못하는 할머니의 발은 생각을 바꾸어 자연에서 살아가는 미물들에게도 인심을 후하게 베풀어 품격을 높이기로 했다. 반전이다. ‘반은 네 양식/ 반은 내 양식/ 나락을 반으로 툭 떼어 주겠단다. 과연 통이 큰 할머니시다. 가까운 옛날 대가족이었던 시절 곳간의 주인이었던 할머니, ‘곳간에서 인심 난다’ 는 속담만 보더라도 여자 (어머니, 할머니)의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가족과 아랫것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마음 ‘치마폭 같은’ 넓비에 비유하지 않았던가? 시인의 ‘참새와 할머니’에 얼굴 내민 소재들은 익어가는 결실이 내지르는 정겨운 도란거림이며 어린 시절 들녘에서 보았던 기억 속 따뜻한 풍경이기도 하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서로 기대어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늘 배려하고 양보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시인은 묵시적으로 명령하며 정의의 실행자인 할머니의 입을 빌어 고단한 세상살이에 더불어 살자 한다. 동심을 잃어버린 어른아이에게 건네는 시인의 우유 같은 메시지에 답하려면 모나미 볼펜과 노란 포스트잇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다.

 

시를 걷는 오늘 <15>옥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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