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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선거, 한 표 30원에 매수, 가치는?
39년 선거, 한 표 30원에 매수, 가치는?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7.1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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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고무신, 양말, 비누, 수건.

이 단어에서 연상되는 일은 무엇일까. 여기서 막걸리만 제외한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다. 이들 물품은 오래전 선거문화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들은 막걸리 한 잔에 소중한 한 표를 ‘말아’ 드셨다.


근대국가 형성기 조선민중들은 조선총독부의 ‘문화정치’라는 유화정책에서 제한적인 투표에 에 참여했다. 이때 선거권자는 25세 이상의 남자, 1년 이상 선거구에 주소를 갖고 있거나 5원 이상의 세금을 납부해야 피선거권이 주어졌다. 여성참정권이 부여되지 않았다. 일제는 일본의 선거제도를 그대로 도입해 부·도·읍·면협의원만 피선거권을 가진 자에 한해 투표하도록 했다. 이들 의원들은 관선과 민선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지정면과 일반면, 인구수에 따라 정원이 달라졌다. 이 시기 의원들은 부·도·읍·면에 자문기구이고 1930년 12월 이후 면제개정에 따라 의결권이 주어졌다. 지방의원은 명예직이고 지역 내 토호와 유력자들의 발판이었다. 부나 도회의원은 조선총독부나 부·도·군청에 결탁해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다보니 일부 후보자들은 명예와 권력욕에 빠져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선거가 가열되자 총독부는 1929년 9월 30일 ‘조선 지방선거 취체규칙(단속규칙)’을 제정한다. 이 규칙 제8조 1항에는 “투표를 얻거나 얻게 하거나 얻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선거인 또는 선거운동자에 대한 금전, 물품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제의 또는 약속하는 경우, 향응접대”할 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부역자’가 되고 싶은 의원 후보자들은 술과 돈을 뿌리면서 다녔다. 김*수(金*守, 47)는 1939년 4월 21일 통영군 장승포읍회의원 입후보에 등록했다. 그는 후보 등록 전에 무보수 운동원 김*윤(金*允, 30)과 공모하고 4월 25일 장승포읍 장승포리 여관업 김*순(金*順) 집에서 표를 얻을 목적으로 장승포읍 수월리 김*준(金*俊) 외 4명에게 4원35전 어치의 주식(酒食)을 제공했다. 후보자와 운동원은 유권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1표에 30원씩 주고 매수하기로 약속하고 전도금으로서 10원씩을 미리 주었다. 거제경찰서는 후보자를 비롯한 7명을 ‘선거단속규칙’ 제8조에 의거 검거했다.


후보자로부터 받은 10원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같은 시기 현미가격은 2등급 1석(114kg 정도, 쌀 1가마 80kg) 평균 24원90전이고, 소주는 35도 1대(19리터) 8원50전이다. 김*준 외 4명은 약속대로 30원을 받는다면 2가마 가까운 쌀과 소주 1대 정도 살 수 있었다. 중일전쟁 직후 전시체제기에 접어든 조선은 곡물가격이 하루에도 수십 배로 올랐다. 하지만 가난한 하층 민중들은 그림의 떡이다. 다대수 민중들은 세금 5원 낼 형편도 아니었다. 최하품 보리 1석의 가격은 9원40전이고, 콩 1등품 1석이 14원에 거래되었다. 시장에는 쌀 한 톨 구경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조선인 교사 봉급이 남자 53원, 여자 48원이고 일반 노동자의 임금은 최하 10원에서 최대 30원이하였다. 따라서 전쟁 이전 쌀 1석은 평균 18원86전이었으나 전쟁 직후 24원90전까지 치솟았다. 일반 노동자의 한 달 임금은 쌀 한 가마 구입하는데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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