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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오늘>13 '그 여자'
<시가있는오늘>13 '그 여자'
  • 옥명숙 기자
  • 승인 2018.05.06 18: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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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이 월 춘


아침마다 그 여자는 마산어시장 비린내를 이고 왔다
알록달록 몸뻬를 입은 한 마리의 물고기 그 여자
함지박 가득 어판장 잰 걸음과 새벽하품을 담고 왔다
보리 쌀 한 됫박과 맞바꾼 칠게 장 한 종지
엄마 몰래 집게 다리 하나 빨다 보면
오뉴월 땡볕도 겁 안 나던 짭조름한 세상
석양이 깔린 푸른 바다는 아예 없었다
이고 온 함지박 곳곳에
그 여자 미소 하나하나마다
사람들의 등 푸른 삶이 피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2017 하반기 < 경남작가> 중에서

감상

새벽의 문을 연 마산어시장은 분주하다.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사람들 사이로 삶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시장에서 함지박 가득 칠게 장 떼어 팔러 오는 그 여자는 예쁘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 속에 등장하는 ‘인어공주’ 같은 고운 몸매의 여자, 알록달록한 몸뻬를 입고 바다를 팔러 온 여자, 연신 하품을 하면서 잠이 들깬 표정으로 신작로길 달려온 여자. 그 여자, 싱싱한 새벽을 퍼 담아 집집마다 아침밥상을 차려주러 온 듯. 이처럼 시인이 그려내는 ‘그 여자’의 이미지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잔잔한 웃음이 번진다. 도대체 비린내라곤 날 것 같지 않은 여자.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전투적으로 쏟아낼 것 같은 느낌이라곤 들지 않는 거다. 마냥 착하고 순해서 덤도 푹푹 줄 것 같은, ‘본전 밑지고 판다는 뻔한 거짓말 같은 건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여자한테서 ‘보리살 한 됫박‘과 맞바꾼 칠게장 한 종지, 엄마 몰래 다리 하나 빨았다.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 짭조롬한 다리 맛은 칠게가 온몸으로 퍼뜨린 맛으로 특징 지워진다. 시인은 오래 전 맑게 갠 기억 하나 꺼내 동산을 베고 누워 들려주듯 잔잔하게 읽어준다. 그 기억의 맛이 어찌나 싱싱한지, 시를 읽는 동안 ”이건 내 기억이잖아” 하고 말할 뻔했다.
어린 시절, 빨간 고무 대야에 생선을 넘치게 담아 팔러 오는 생선장수 아낙들이 제법 많았다. 마치 방물 장수처럼 싱싱한 생선을 이고 이 집 저 집 팔러 다녔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 허기에 지치면 용기를 내어 밥 한 술 얻어먹자며 마당으로 찾아 들기도 했다.
변변한 반찬도 없는 꽁보리밥을 얻어먹은 대가로 생선 몇 마리를 건네기도 했는데 그때야말로 본전 밑졌을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눈치 빠른 엄마는 “그라지 마소, 묵던 밥에 수저 하나 더 놓은 것 뿐인데” 라고 하면서 얼른 남새밭으로 달려가 푸성귀를 잔뜩 뽑아 봉지 가득 채워 들려주기도 했다. 그녀들은 시장이 먼 마을과 인근에 바다가 없는 마을을 찾아 다니며 비린내를 팔아 가족들 생계를 책임지고 자식들 공부시키던 생활력 강한 여자들이었다. 1960~80년을 되감기 해 보면 우리들 하루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오래 전 기억은 모래톱에 스미고, 다시 오뉴월 땡볕이 달려 오고 있다. 수상한 비린내가 좋아 골목길을 달리며 목을 빼는 고양이처럼 바다를 외치며 집집이 방문하던 그 시대의 여자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마에서도, 구릿빛 미소에서도 비린내가 풀풀 날리던 그 여자들은.

 
옥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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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공주 2018-05-09 13:13:13
알록달록한 몸빼를 입은 아낙을 인어공주로 표현한 기자의 표현력에 감탄합니다. 옥명숙 기자의 글을 보면 세상을 동화처럼 바라보는 눈을 가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번 좋은 글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