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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전 독봉산 '요물'이 세상을 어지럽혀
90년전 독봉산 '요물'이 세상을 어지럽혀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4.06.2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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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4년 8월 18일자 조선일보 기사, 거제 독봉산에 요물이 혹세한다는 가십기사.

종종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간혹 등장하는 ‘가십거리’(입방아거리) 단골메뉴는 괴담(怪談) 또는 기담(奇談)이다. ‘귀신이 나오는 집’, ‘이상한 소리’, ‘소복 입은 여자가 산에서 운다’ 같은 괴담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에게 흥미꺼리 또는 재미있는 소재가 되었다.

필자는 어린시설 공동묘지에서 혼불을 보고 귀신이 있다라고 믿었었다. 그 귀신이 여자라고 하면 여러 친구들의 입과 입을 건너서 여러 가지로 보태지다 보면 기담이 되곤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만들어지거나 만들어낸다는 게 특징이다.


지금과 달리 전깃불이나 가로등 하나 없고 라디오가 귀하던 시절. 90년 전의 고현 독봉산에서 일어난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독봉산(獨峰山) 정상에 요물(妖物)이 혹세(惑世)”한다는 신문기사다. 이 기사는 『조선일보』 1924년 8월 18일자 3면에 게재되었는데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물이라고 꼬집어 말하고 있다.

원래 독봉산은 지금의 상동동과 수양동에 걸쳐 있는 산이고 높지 않아 등산하기 좋다.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8월 1일부터 그 산 최정상 봉우리 절벽 위에서 날마다 밤 10시부터 어떤 사람이 불을 켜 놓고 무슨 글을 읽는데 그 읽는 소리가 고현 시내까지 들렸다는 것. 부근 사람들은 ‘기괴한’ 소리에 이상하게 여겼다. 심지어 별별 소문이 다 유행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러한 풍설에 미혹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급기야 고현에 살던 청년들은 그 곳에 가서 조사를 벌여 모든 사람의 미혹과 소문을 없애자고 결의했다. 처음에 의기양양하던 청년들은 산길이 험하고 밤에 올라가기가 무서워 의기소침해 지고 말았다. 결국 청년들은 산만 쳐보고 “어떠한 요괴가 세상 사람을 농락하고자 하는가”하면서 분개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글을 읽고 있었는지, 왜 밤마다 그 험한 산 정상에서 긴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신문은 독봉산의 ‘요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냥 재미난 입방아거리 혹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 숨겨진 이야기 하나가 있다. 일제는 독자의 흥미꺼리를 유발하는 기사 보다 거제지역의 독립운동 기사를 통제했다. 조선총독부는 온갖 잡설의 괴담을 전파시키는 대신 독립운동을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고 선전했다.


요즘 정부는 어떤 내용으로 민중들에게 혹세무민하는지. 언론은 민중들에게 어떤 입방아거리를 가지고 분열과 대립을 부추길까. 독봉산의 요물 해프닝이 주는 교훈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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