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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 오늘>11, 고향집에서, 안인수
<시를 걷는 오늘>11, 고향집에서, 안인수
  • 옥명숙 기자
  • 승인 2018.04.12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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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서

-안인수-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영정사진 속
아버지 모습 변함없고
서너 번 바뀐 벽지며 장판이
세월을 켜켜이 쌓아온
거미줄이며 먼지를 걷어내고
말끔하다
아버지 생전에
신발이 닳도록 드나드셨던
창고는 그 자리에 남아 굳건한데
여닫이문은 삐걱거리고
사용하던 연장통을 덮은
두꺼운 먼지는
불면 사라질 세월을
세고 있다 벌겋게 녹슨
망치와 못
호미와 괭이
낫과 톱, 그렇게
짝인 줄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낫과 톱을 쥔
단단한 주먹이 거기 없음을 보고 나는 안다
그렇게 아버지를 만난다

 

고향이란 사전적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혹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다‘ 그리하여 안인수 ‘시의 장소성’은 고향집이 된다.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그곳으로 합류하는 곳, 지금은 액자 속 영정사진으로 만나는 아버지.
당신의 신발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먼지 쌓인 창고와 붉은 녹의 옷을 입은 망치와 못, 호미와 괭이, 낫과 톱과 연장통을 만난다. 이것들은 또 ‘불면 사라질 세월을 세고 있다’ 에서 고요한 슬픔이 아이의 울음처럼
쏟아지는 과장법으로 공간적, 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기억의 첨부파일로 저장되기도 한다. 서랍 속에 넣어둔 아버지란 힘은 몹시 세다. 창고에서도 연장들에서도 낡은 벽지에서도 아버지의 목소리가 깃들어 있다. 그 목소리는 또 땀냄새를 날리며 불끈 일어서기도 한다. 아버지의 삶은 야누스의 표정처럼 한쪽은 거센 파도의 소용돌이와 한쪽은 등을 질 수 밖에 없는 침묵과 공존하며 머물지 않는 풍경처럼 지나간다.
아버지와 호흡을 같이했던 연장들이 먼지를 털고 일어나듯 이미지즘이 서정적 알레고리로 태어난다. 이렇듯 시적 언어로 펼쳐나가는 장소가 되어준 고향집에서 시인은 언어를 끌어 모으고 있다. 아버지의 연대기가 되살아나 펄펄 들끓고 있는 고향집에서 뿌리를 내려 피어나고 확장되는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시인의 시가 늦은 가을 오후처럼 싸하게 다가온다. ‘단단한 주먹이 거기 없음을 보고 나서 안다’ 에서 읽히는 아버지의 부재가 또한 그러하다. 그런면에서 안인수 시 ‘고향집에서’ 는 인생의 재미를 점점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경남작가> 2017 하반기 안인수 ‘고향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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