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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미안해” “용서해 줘” 하지만 너희는 용서하지마라
“사랑한다” “미안해” “용서해 줘” 하지만 너희는 용서하지마라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8.03.1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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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 오늘> 7-안인수 시인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침몰사고는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날 이후 국가가 우리를 위험으로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붕괴되었다. 그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위험을 어떻게 방치하고 키워왔는지를 명백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랑한다.” “미안해.” “용서해줘.”죽음을 예감한 순간 아이들이 가장 많이 남긴 메시지다. 아이들은 사랑했고 미안해했고 용서를 구했었다. 아이들이 사랑했던 이와 미안해했던 이들과 용서를 빌었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했고 미안하다고 말했으며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용서를 구할 수도 용서를 받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이후 우리는 사회 구석구석에 숨겨진 세월호를 찾기 시작했다. 덕분에 불평등과 특권의식으로 뒤틀려있는 사회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절차의 공정성이 사라진 사회, 세대와 계층을 찢어 놓고 쉽게 지배하려드는 권력과 추종세력들의 민낯이 드러났다. 소수자에 대한 뒤틀린 시선과 폭력이 드러났으며 빈곤한 젠더감수성이 사회·경제·이성관계에서 어떻게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지도 드러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이 세월호였다. 그래서 이복규 시인의 시 <벽을 긁다>가 아프게 읽혔다. “나를 용서하지 말아야 / 진정한 용기가 생긴다 / 너도 나를 용서하지 말아다오!” 라는 시인의 외침이 가슴을 긁는다. 필자 역시 세월호를 만든 죄인이기에.


벽을 긁다


이복규

헨릭 고레츠키 교향곡 3번을 들으며
손톱을 깎다가
문득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 실의 벽
손톱으로 긁어 남긴 글이 떠오른다
“어머니, 비록 내가 먼저 떠나지만 울지 마세요.
고결한 천상의 신께서 기도해주실거예요.
절 버리지 마세요. 아베마리아.”
세월호에서 발견된 손톱이 없는 아이들 손
이 봄을 건너오지 못하는 아이들 손이
내 가슴을 긁는다
304명의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온힘으로 선체를 긁으며
1초의 희망 불씨를 살리려 했던 핏물이 섞인
바닷물
7시간이나 무엇을 했는지 밝히지 못하는 그녀
손톱에 연분홍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을까
비로소 몇몇을 감옥으로 보냈지만
우리가 정작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앞으로 평생을 눈물로 벽을 긁어야 하는 어머니들의 손 때문이다
유흥주점의 전단지가
바닥을 긁으며 지나가는 도시의 저녁
밤새 내린 비가 고인 썩은 웅덩이
용서라는 말이 비리게 와닿는 저녁
나를 용서하지 말아야
진정한 용기가 생긴다
너도 나를 용서하지 말아다오!

이복규 시집 『슬픔이 맑다』에서 <벽을 긁다> 전문인용(全文引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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