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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걷는오늘> 6-아버지와 고등어찌게
<시를 걷는오늘> 6-아버지와 고등어찌게
  • 거제통영오늘신문
  • 승인 2018.03.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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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수 시인

어릴 적 어머니는 가끔 부산 이모 집에 다니러 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었다. 뱃사람들이 먹는 방식으로 만든 뭉텅뭉텅 썬 무를 넣은 고등어찌개를 자작하게 끓였다. 입안에 착착 감기는 짭짤한 맛에 밥 한 그릇은 뚝딱이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당신이 없는 동안 먹을 찬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고등어찌개를 끓였다. 그러면 반찬은 남게 되고 어머니는 그것을 언제나 서운하게 여겼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가 없을 때 먹을 수 있는 특식의 유혹을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나도 아이들에게 요리나 간식을 만들어 주는 것을 좋아했다.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 수제비, 칼국수, 카레, 피자, 호떡, 파르페, 아이스크림 등등. 하지만 영주의 요리솜씨가 출중한 탓에 나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요리에 대한 기억을 주지 못한 것 같다. 다만 영주가 없을 때 외도하듯 아이들을 꼬드겨 라면을 끓여먹는 것으로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최종득 시인의 동시 <좋은 날>은 아이들과 아버지의 외도가 있다. 시에서 엄마 몰래 시켜먹는 짜장면 한 그릇은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장면이 된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늦게 들어오는 날 먹는 짜장면 한 그릇은 아이들과 아버지를 공통의 비밀을 갖게 함으로써 동지의식을 갖게 만든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에는 엄마 몰래 아이들과 라면 한 그릇 끓여먹어도 좋지 않을까?


좋은 날

최종득

아버지가 늦게 오는 날보다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 좋다.

엄마는 아버지 없다고
있는 반찬에 밥 먹게 하지만
아버지는 엄마 해놓은 반찬 많아도
꼭 짜장면 시켜준다.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된다고
창문 활짝 열어젖히고
하나도 남김없이 먹는다.

엄마 몰래 먹는 짜장면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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